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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홍 Jun 21. 2023

길에서 뜻을 찾는 일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어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들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p.194 뜻을 이루기 위해 길을 찾는 것도 훌륭하지만, 이 길에서 뜻을 찾는 것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고 말이죠. 그 이후로 비로소 남들의 길이 아니라 내 안의 길에서 뜻을 찾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 산 정상은 내 갈길이 아니었구나. 아, 그래서 이렇게 들길과 강 길을 지나게 된 거구나. 아 그래, 내 갈 길은 바다였는지 몰라. 다행이다. 하마터면 바다의 낙조를 보지 못할 뻔했구나, 어서 부지런히 바다를 향해 걸어가자꾸나
(...)
끝이 있는 잣대로 감히 끝이 없는 것을 재어가며 떨던 건방이 멈춰지자, 그제야 비로소 내가 길을 만난 게 아니라 길이 나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중3부터 진로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어느 고등학교에 가야 하지?' 연합고사를 보던 시절이었어요. 성적에 맞춰 고등학교를 갔어요. 거기서 다시 문과 이과 중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을 때, 이과를 선택했어요. 이유는 취업이 잘 될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때까지는 수학이 좋았거든요. 고3 수능 보기에 전 무엇을 전공을 할까 또 고민을 합니다. 유망직종 모음을 우연히 봤는데요. [환경기사]가 전망 좋다는 기사를 봤어요. 막연히 괜찮은데, 하고 있다가  수능을 봤지요. 수능 성적이 생각보다 더 안 나왔어요. 어중간하게 지방대 가서 부모님 힘들게 하느니 집 앞에 있는 대학을 가자 결심했어요. 그땐 좌절모드였어요. 내 인생이 잿빛 같은. '지방대 나와서 취업은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공부도 지지리 못하는데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원서도 동네 대학교에 딱 하나 넣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그 학교에 환경공학과가 있더라고요. 환경공학부에서 1년 생활하고, 2학년 때부터 학부제에서 학과제로 바꿔요. 정말 전공을 선택해야 될 때가 온 거죠. 환경공학, 안전공학, 자원공학 이렇게 세 개가 있었어요. 그중 자원공학을 선택했어요. 이유는 단 하나, 교직 이수가 가능했어요. 혹시 알아요. 선생님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어릴 적 내심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교생실습 한 달하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니 구나 했어요. 교생 대표를 하고, 1, 2, 3학년 다 들어가고, 지도 선생님 대신 수업도 다했고, 점수도 아주 잘 받았어요. 그러나 너무 열심히 한 탓일까요? 그런 생활을 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아마 처음부터 너무 센 업무량에 지레 겁먹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다 시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전공 관련된 곳으로 취업했어요. 취업하면서 한 결심은 이 분야에서 10년을 일해보자였어요. '돈 내서 4년 배웠으니 10년은 써먹어야지'하는 단순한 이유였어요. 3년을 못 채우고 나왔지만 임신한 후에 어찌어찌 돌고 돌아 다시 전공 분야 쪽으로 일하고 있어요. 10년 훌쩍 넘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사이에 또 많이도 돌았습니다. 아이 낳고 책 판다고 영사에 도전해 보고, 놀이시터를 하고, 하원 도우미를 하고, 보육교사 자격증을 이수해서 보육교사도 해 봤어요. 아이들을 잘 키운답시고 이리저리 자료수집하고 아이들과 놀던 것을 일과 연관 지어 본 거지요.

지금은 집에서 일을 하면서 온라인 속에서 헤엄치고 다녀요. 주로 큰 테마는 책이지만 책 속에도 분야가 한 두 갠가요. 처음에는 육아서로 시작해서 지금은 서양고전, 동양고전을 중심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그리고 육아, 여전히 놓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면서 해나가고 있어요. 동양 고전을 필사를 하다가 필사의 맛을 알게 되었어요. 이 맛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쓰담쓰다] 필사반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쓰담쓰다]를 운영하다 보니 마케팅이 궁금해져서 마케팅 공부에도 관심을 갖고 있고요. 그림책은 말해 뭐 합니까. 아이들에게 읽어주다 보니 제가 더 좋아서 보던 그림책. 그 방대한 책의 분야에서 헤엄치며 매일 놀고 싶은 게 요즘의 심정이에요.

이 길이 어떻게 모이게 될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모임에 참여하는 즐거운 속에 살고 있어요. 첫 발이 2020년 코로나 창궐 시점이었어요. 2019년도에 번아웃이 와서 일을 쉬기 시작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거든요. 혼자 읽은 책을 남기기 위해 블로그 시작했는데,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 세상을 기웃거리게 되었어요. 그게 큰 기회가 되었어요. 배우고 싶은 것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기회! 이 기회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어요. 그래서 그때 온 번아웃이 지금은 너무 고맙기만 합니다. 그 멈춤으로 인해 '나를 돌봐야겠어! 나를 찾아에겠어!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우선 이것저것 해보자!' 하는 결심을 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온라인 세상 속을 즐겁게 헤엄치고 다니고 있지만 그때보다는 좀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목표가 생긴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 안에서부터 나 아가다 보면 길이 보일 거라 믿으며 오늘도 이렇게 걸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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