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담홍 Aug 19. 2023

나다워지는 시간

몸골에서 쓴 편지, 안상학

몽골에서 쓴 편지

-안상학

독수리가 살 수 있는 곳에 독수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나도 내가 살 수 있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자작나무가 자꾸만 자작나무다워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나도 내가 자꾸만 나다워지는 곳에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내 마음이 자꾸 좋아지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자꾸만 좋아지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자꾸만 당신다워지는 시간이 자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런 당신을 나는 아무렇지도 아니하게 사랑하고

나도 자꾸만 나다워지는 시간이 자라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나를 당신이 아무렇지도 아니하게 사랑하는

내 마음이 자꾸 좋아지는 당신에게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도 자꾸만 마음이 좋아지는 나에게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매일 아침 시 배달을 받아요.
오늘 배달 받은 시, 제 가슴에 찡하게 다가옵니다.

'나도 자꾸만 나다워지는 시간이 자라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라는 시의 구절을 읽는데 가슴이 찌르듯 아팠어요.

내가 나다워지는 시간이 보내려 애쓰는 시간에
'아이가 아이다워지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나는 어떻게 해 주었는가? 아이의 시간을 존중해 주었는가?' 스스로 묻게 됩니다.

어제 아이의 감정 일기장에 적힌 글이 떠올랐어요.

'소속되고 싶다'
'마음껏 울고 싶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 과정을 잘 이겨낼 거라 믿으면서도 아이가 자라가고 있는 주위 환경을 둘러보게 됩니다.

학교라는 공간에 아이를 아이다움을 인정해 주는 곳일까?
가정에서까지 아이를 다그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가 마음 편하게 쉴 곳은 있을까?
아이에게 세상의 잣대에 맞춰 살라고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서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친구들 사이에서 가슴 아픈 아이에게 제가 해 줄 수 있는 건 단단하게 버팀목이 되어 따뜻하게 안아주고, 바라봐 주는 것뿐이에요.

너무 요란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세상사라고
우리 이 세상 잘 기대어 살아가 보자고 말하며 두 손 꼭 잡아봅니다.

​아이야 넌, 우리 가족에게 소속되어 있어.
아이야 넌, 언제든 여기에서 목 놓아 울어도 된단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에서 뜻을 찾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