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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홍 Feb 21. 2023

[새의 선물] 여자의 삶, 성에 대한 주체성에 대하여

새의 선물, 은희경, 문학동네

새의 선물은 1969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소설로, 주인공은 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 여자 아이 진희이다. 진희 엄마는 진희가 어릴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뒤로 외할머니와 이모, 삼촌과 함께 살게 되었다. 진희는 자신의 시선으로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를 하나 둘 해나간다. 그중 광진테라 아줌마, 순분 씨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순분 씨의 모습에서 여자의 삶에 대해서, 주체성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부분 공유해 본다.     

아줌마가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이 바로 자기의 삶이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양복점 뒷방에서 강제로 순결을 잃은 순간 이미 자기의 삶은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아저씨가 자기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줌마는 그런 생각을 꿈에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줌마들은 자기의 삶을 너무 빨리 결론짓는다.
<출처 : 새의 선물, 은희경 장편소설, 문학동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건만 아줌마는 자기 인생에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고 있다. 주어진 인생에 충실할 뿐 제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모험심이 부족하다. 진정한 자기의 삶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찾아보려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자기의 삶이라고 믿고 견디는 쪽을 택한다.
 <출처 : 새의 선물, 은희경 장편소설, 문학동네>     
문제는 그런 첫 경험이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이 많다는 사실이다. 내 주변에서 듣고 본 것만 해도 그렇다. 꼭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와만 첫 키스를 하고 처음 옷고름을 풀게 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성은 자기 자신의 것이다. 남편의 것도 아니며 처음 문을 연 남자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출처 : 새의 선물, 은희경 장편소설, 문학동네>     

이 대목들을 보면서 내가 결혼을 결심했던 이유와 결혼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부분들이 떠올랐다.     

남편이 첫 남자친구였고, 첫 성 경험을 하게 된 남자이기도 하다. 연애 7년 차에 접어들 때쯤, 고민이 되기 시작됐다.     

‘결혼 안 할 거면 이제 헤어져야 될 것 같은데...’

‘헤어질까? 결혼할까?’     


이 사람과 계속 만날 자신도 그렇다고 이별할 자신도 없었던 것 같다. 벌써 그때는 이 사람이 나의 생활에 많이 침투되어 있는 상태였다. 둘 다 서울에서 자취 생활을 할 때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둘이 서로 집을 오가며 지냈다. 요즘 말하는 동거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동거 비슷하게 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다. 어설픈 동거 생활 5년. 그러다 보니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친한 친구들은 살짝 눈치를 챈 것 가기도 했다. 동거생활은 결혼과 이별을 선택할 때 크게 작용했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면 나는 결혼 안 하고 혼자 살아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다. 성에 대해 자유롭지 못했던 거다. 이 사람과 벌써 이렇게 동거 생활을 했는데,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건 도덕적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 시절 tv속 드라마에서 남녀가 동거하다가 헤어져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과거에 동거했던 여자는 아주 몹쓸 사람이 되는 설정으로 종종 등장했었다. 그런 것을 보고 자란 나는 스스로에게 동거 생활은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주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사람과 헤어지면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결혼한다고 생각했을 때 또한 막막했다. 누구나 이왕이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런 속물 중에 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거기다가 플러스 장남이 아닌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아버지가 장남이어서 어머니가 고생하며 살 던 모습을 보며 자라았기 때문에 ‘장남’이란 타이틀 자체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은 경제적 여유도 없는 데다 누나가 셋인 집 안에 장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더욱더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성’에 대한 주체성을 갖지 못하고 결혼을 선택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난함이 싫었고, 이 사람의 무능함이 싫었다. 결혼 준비하면서도 양가 부모님에게, 특히 시댁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 화가 났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마음이라는 걸 알겠는데, 철없던 시절에는 나는, 나만 가난하게 출발하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결혼을 하고 2년 뒤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20개월 뒤 둘째 아이까지 태어났다. 정말 가난함의 연속이었다. 육아 또한 쉽지 않았다.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에 한 품이라도 벌어야겠다며 어린아이들을 두고 일을 해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던 시간이었다. 결국 결혼 생활 안에서 점점 ‘나’라는 사람은 사라져 갔고, 그 자리엔 ‘가족’만을 위해 살아가는 내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가족’을 위해서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면서 아이를 픽업해서 데리고 오고, 저녁을 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설거지를 하다가 싱크대에 쭈그리고 앉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 삶은 왜 이렇게 힘들고 지치기만 하냐고, 왜 나는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냐고. 누가 설거지라도, 아이 목욕이라도 한 번 시켜주는 사람이 없냐며 신세한탄을 하던 시절이었다. 남편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돌아오는 건 싸움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늘 이혼을 결심하며 살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차마 이혼을 못하고 이를 악물고 버텨야만 했다. 어린아이들이 안타까운 것보다 스스로가 또 얽매였던 것 같다. 막상 이혼하려고 하니 ‘이혼녀’라는 타이틀이 무서웠던 거였다. ‘아이들 키우느라 경력 단절 되었는데, 나는 어떤 일을 하며 벌어먹고 살지?’, ‘실패한 인생이라고 손가락질받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희의 말처럼 주체적이지 못했고, 모험심이, 용기가 부족했던 거다.      


주체적이지 못했던 나는 견딜 수 없이 힘들었지만 떠나지 못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건만 아줌마는 자기 인생에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고 있다. 주어진 인생에 충실할 뿐 제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모험심이 부족하다. 진정한 자기의 삶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찾아보려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자기의 삶이라고 믿고 견디는 쪽을 택한다.
<출처 : 새의 선물, 은희경 장편소설, 문학동네>


그때의 나를 어루만지면 괜찮다 잘했다 해주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 시간 잘 견뎌 지금은 잘 지내고 있지 않느냐고. 그 시절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가며 살아내지 않았냐고. 책으로부터 삶의 태도를 다시 배우려 노력하지 않았냐고. 잘했다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거라며 스스로를 안아주었다.      


진희의 눈을 통해 순분 씨의 삶을 보면서 20, 30대의 어린 나를 만나 위로해 줄 수 있어 참 다행이었던 시간이다.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 나의 삶을 주체성 있게 살아가는 중임을 확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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