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10년 차, 엄마의 자리에 짓눌리던 삼십 때 중반의 어느 날 갑자기 사는 게 힘겨워졌다.
'땅으로 커지는 거 아니야’
‘이러다가 내가 영영 사라질 수도 있겠어’
주저앉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육아, 살림 그리고 일. 육아는 시작부터 독박 육아 고공행진이었고, 하락하는 직장 생활을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애쓰던 시간이다. 거기다가 살림까지 손수 다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의 짐.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기가 힘들었다.
“누가 너보고 애 둘 낳으라 했어!”
“누가 너보고 일하래! “
“누가 그런 사람이랑 결혼하래!”
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이런 책망들이 돌아올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선택한 거야! 어떻게든 할 수 있어!' 하고 이를 악물고 버텨내었다. 하지만 버티면 버틸수록 쌓이는 건 마음속에 분노와 체력의 한계였다.
하루하루 위태로운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남편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정은아, 회사 그만두자. 어떻게든 살 수 있어, 정은아. 응? 너 너무 위태로워 보여. 힘들어 보인다고. 우리 잘 살 수 있어. 내가 잘할게."
와르르...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고, 어쩜 자포자기였는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어렵게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를 그만둠과 동시에 당장 아이들 유치원비, 학원비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이번만큼은 나부터 살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앞세웠다. 내가 살아야 가족도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 돌봄의 시간'
육아 10년 만에 찾아온 휴식기. 나와의 시간을 책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보니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평온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코로나19가 왔고,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 세상에 접속을 하게 되다. 온라인 속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며 점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온라인 스터디로 [논어] 필사를 하게 되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공자님 말씀을 필사하는데 눈물이 주르륵... 필사하면서 나를 돌보고 있는 내가 있었다.
<논어 제9편 자한> 6. 선생님께서 말라하기를 ‘나는 관직에 등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재주를 익히게 되었다’라고 하셨다.
이 문장을 필사하는 순간 마음이 꿈틀거렸다. 그때 썼던 단상을 적어본다.
[와... 소름! 나에게 너무나 필요했던 말이다. 여러 가지 알바 경력, 직장 생활 그리고 지금 전업주부 생활로 인해 재주 아닌 재주가 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다치면 다 된다!’라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고, 컴퓨터 문서 작업 시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 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육아 기술이 늘어났고,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독서법을 익히고, 글을 쓰기 시작해서 전자책을 썼다. 집에 있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나는 또 다른 재주를 익히는 중이이다. 그러니 혼란스러워하지 말고, 잘해보자!
즉, 나는 집에 있기 때문에, 직장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여러 가지 기술을 익히고 있다! ]
2019년 어느 날 아침
이렇게 내가 몰랐던 나, 내가 잊었던 나, 내가 피했던 나가 글 속에서 불쑥 올라와 '나 좀 봐줘. 나 좀 안아줘'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 시간을 찐하게 보냈다. 나를 안아주는 시간이었다. 그 이후 필사에 매력에 빠져 혼자서 필사를 하기도 하고, 필사 스터디에 참여해서 필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2022년 4월에 쓰담쓰다 필사반를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첫 필사 책으로 <모순, 양귀자> 책을 선정했다. 20대에 읽었던 모순을 다시 만나고 싶었었다. 20대에 읽었을 때, 삶의 모순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책. 내가 보는 상대의 삶의 모습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각자 나름의 고민이 있는 거야.’ 그때의 낯설었던 기억을 다시 복귀해보고 싶고, 이것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글을 천천히 필사하며 음미하는 시간. 작품 속에 주인공 내면 안으로 푹 빠져 들어가는 동시에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필사모임은 매일 읽을 분량을 알려주고, 책을 읽다가 머무는 문장을 필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필사 분량은 자율이었다. 단, 자신이 그 문장에 머물며 들었던 생각을 적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했다. 잠시 나와 나가 만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A님은 주인공 안진진의 무책임한 아빠처럼 자신의 어린 시절 안진진 아빠와 너무나 흡사한 자신의 아빠 모습이 떠올랐다고 했다. 어린 시절 아파했던 자신을 바라보며 그럼에도 잘 살아온 자신을 안아주는 시간을 보냈다고 하셨다. 눈으로 읽을 때와 손으로 글씨를 따라 쓰며 읽을 때 가슴에 스며드는 농도가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필사하는 사람들의 필사와 단상은 그 어떤 곳에도 오픈되지 않고, 카톡방에서 소곤소곤 운영된다. 그 어떤 곳보다 내밀하게 안전하게, 안전지대를 만들어 자기 검열 없이 편안하게 자기와 만나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 외적 글쓰기도 분명 필요하지만,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내적 글쓰기도 분명 필요하다고 믿는다. 자기가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을 안아줄 수 있는 글쓰기는 스스로 살아가는 데 큰 힘과 의지가 되어가고 삶을 살아가는 활력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요즘처럼 보이는 것에 중요하다고 외치는 시대에서는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이런 시간을 통해 나 자신과 화해를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스스로 셀프 치료가 가능하고, 나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힘이 생김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필사를 통해 자신이 삶을 살아가는 자양분을 얻길 바라본다. 그런 의미로 앞으로도 꾸준히 필사반을 운영해 나가려고 한다. 스스로 사랑하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방법으로 필사를 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