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마음 아픈 거, 정상이야. 마음이 아프다는 건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거야." -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P.79) -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아팠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아팠던 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 스스로 다독여 본다.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 남편과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결혼하면 당연히 여자는 가정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고지식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가정에 충실해지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옭아맸다.
그런데 자꾸 물음표가 생겼다.
'왜 나만?'
'왜 나는 회사를 그만두어야 해?'
'왜 나는 회사 다니면서도 육아와 살림을 다 해야 해?'
'왜 나는 회사 다니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회식에 참석 못 하고 아이를 하원시키러 가야 해?'
수많은 왜가 따라다녔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납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럼에도 아이를 돌볼 사람이 나밖에 없기에 나는 가정에 굴레에서 살았다.
남편은 나 몰라라. "나는 회사가 바빠서 안 돼. 야근이야" 이 한마디로 모든 걸 함축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왜 나만 희생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삶이 억울하게 다가왔다. 사회적 시선 속에 나는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사람이었지만 나의 본능은 나의 삶을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치열하게 싸웠다. 싸운다고 변화하는 건 없었다. 아니 있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깊게 주는 것. 그리고 상처를 주긴 했지만 그만큼 또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서로 입장을 조금씩 알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 치열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싸우는 열정만큼 아이들에게열과 성을 다해 사랑을 주었다.
이상했다. 지나고 온 지금도 어떻게 이게 동시에 가능했을까? 스스로 묻는다. 아마 '잘 살고 싶은 열망'이 강했기에 치열하게 싸우고, 치열하게 육아했던 거 아닐까. 불합리하다고 느낀 것 또한 삶을 개선하고 싶다는 욕구가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감이 강하게 작용했다. 내가 한 선택 후회하고 싶지 않았으니깐.
결혼도 내가 한 것이고, 아이를 낳은 것도 내가 한 선택이었다. 물론 첫 시작은 '함께'였다. 하지만 점점 '혼자'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나에게만 모든 책임이 요구되는 것 같았다. 내 삶에만 변화가 찾아온 것 같았다. 아니었는데, 나의 힘듦으로 다른 것들은 보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치열하게 싸운 시간이 다시 '함께'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을 중심으로, 가정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나는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고, 지금도 그렇게 일을 하고 있다. 육아하면서도 경제적인 부분을 놓고 싶지 않았고, 나의 성장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살아가다 보면 살면서 꼭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어 살아가는 것을 육아 시작과 동시에 치열하게 고민했다.
처음 육아할 때 억울한 감정이 들어와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지금은 억울하지 않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사람이니깐.
그리고 이제 와 보니 내 삶도 중요한데, 내 삶에는 아이들이 있고 남편이 있다. 나와 가족이 분리 된 것이 아닌 내 안에 가족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내 삶의 일부분이다.
가정을 이룸과 동시에 내 시선이 아닌 사회적 시선에 앞서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기에 내가 원해서 가정에 머무른다. 타의가 아닌 내 의지로.
내 마음을 인정해 주고 토닥여 주자 마음이 스르르 괜찮아졌다.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억울함에 분노하는 나를 위해 나는 몇 년간 쓰고 또 쓰며 내 마음의 얼룩을 세탁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보낸 덕에 얻을 수 있는 편안함이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된다. 방심하면 어느 순간 또다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온다.
그래서 지금도 필사를 도구로 글쓰기를 지속해서 이어 나가고 있다.
쓰담쓰다 필사모임을 운영해 나가는 첫 번째 이유는 분명 나를 위함이다. 앞으로도 내 마음 잘 살피며 내 의지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