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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홍 Mar 03. 2023

강남미인

성형에 대하여, 나다움에 대하여...

요즘 강남미인을 보다가 나의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쌍수했다. 갑분싸.

나는 어릴 적 내가 나름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자랄수록 어른들의 시선이 아니었고, 학교를 다니면서 결정타를 날리는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생4학년 때일이다.

짓궂은 남자친구들이 하교 후, 우리 집까지 쫓아오며 나를 놀려댔다.


눈 찢어졌데요~눈 찢어졌데요


학교에서 집까지 20분가량을 뒤쫓아오며 놀려댔다.

는 집에 와서 엉엉 울었다. 그런 날 본 엄마는 가슴 아팠나 보다. 

그 이후였는지, 그전부터였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는 늘 나에게 말씀하셨다. 



크면 쌍꺼풀 수술 해줄게.

엄마는 내가 어릴 적에 엄마가 내 머리를 바짝 묶어 내 눈이 올라갔다고 늘 자책하셨다. 

아기 때는 예뻤는데... 하시며;; (아기 때 안 예쁘기는 쉽지 않음ㅋㅋ)

친척들도 모이면 그 이야기ㅜㅠ (사랑이었으리라ㅎㅎ)


그런 말을 듣고 자란 나는 점점 나의 외모에 자신감이 없어졌다. 

사춘기가 되면서 여드름까지 덕지덕지...

대학생이 되어서도 화장에 관심이 안 갔다. 어차피 하나 안 하나 별 차이를 못 느끼지 못해서인지 재밌지 않았다. 답답하기만 할 뿐. (지나서 생각해 보니 성향도 큰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화장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


그때 당시 나는, 못생겼어. 끝! 

어쩌라고;;;배짱. 그냥 편한 데로 살았다.


그렇다고 쪼그라들어서 살았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외모는 외모일 뿐, 소개팅과 미팅을 안 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달랐다. 나에게 옷을 예쁜 게 입혀보려 시도를 여러 번했다. 

정장을 왜 자꾸 사주는지;;; 치마는 왓?

엄마의 공수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면바지에 티. 청바지에 티를 고수했다.


급기야 엄마는 날 동네 성형외과로 끌고 갔다. 

지금은 없어진 우리 동네 유일한 성형외과

파리성형외과

가기 전부터 나는 희망이 없을 줄 알았지만, 의사 왈


수술한다고 더 좋아질 가망성은 없어요.


상처만 받고 나왔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서울 강남에 가서 쌍수를 하고 왔는데 


매직!!!! 오우!! 역시 강남이야!! 시골 촌 구석 성형외과랑 급이 다른 걸!!


나도 하고싶었졌다.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바로 서울 가란다.

서울에서 임용준비하는 친구에게 하루 신세 지고 쌍수 상담받고 수술 감행했다.

수술 비용을 말하자 엄마는 바로 엄마는 바로 계좌이체를 해 주었다. 


일사천리;;; (우리 엄마가 이렇게 돈에 관대한 사람이었단 말인가?)


그렇게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쌍수를 했다.



그 이후의 나의 삶을 달라졌을까?

음... 그래도 내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은근히 못생김에서 탈출한 기분이 들었다. 

어깨가 조금 펴진 느낌이랄까.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좀 자신감이 생겼었다.


지금은 비록 한쪽이 풀린 상태지만.

(그렇다. 내가 수술 살 당시는 집는 게 유행이었다. 그래서 금방 풀렸다.)

엄마는 다시 가서 수술을 받으라고 했지만, 그다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그저 한쪽도 마저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뿐. 다행인 건 나이가 드니깐 풀린 눈에 쌍꺼풀이 생기려고 한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쌍수를 해도 나, 안 해도 나, 나는 나인 것이다. 


뭣이 중한데.


나는 그냥  나일뿐이다. 그래도 약간의 기술을 빌려 자신감과 자존감을 상승시킬 수 있다면 추천해 본다.



강남미인 여주는 성형을 한 뒤로도 성형한 티가 많이 나서 다시 괴로워하는 모습이 나온다. 여러 가지 상황을 겪어나가면서 점점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이 그려지는 중인데,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어 갈까?


외적인 부분도 분명 무시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내면이 탄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 적 나는 분명 내면이 탄탄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 보다 나아졌지만, 그래도 항상 나의 내면을 잘 살피려 노력한다. 


내면이란, 나란, 사람이란, 시시때때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항상 자신을 돌봐주고, 살펴주고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자기 다움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비록 쌍수를 해서 잠시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던 적도 있지만,

쌍수가 아니라 내 내면에서 나오는 내가 알지 못한 나의 존재를 발견했을 때 나는 더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적이 많다.


내면을 중심으로 삶을 잘 꾸려나가며 외적인 부분도 잘 다듬어 나가는 내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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