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준비하는 본가에 내려가서 발견한 것들
부모님이 이사를 가신다. 12살 때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그 이후로 줄곧 거기에 살았다. 그곳에 있는 동안 부모님은 환갑을 지났으며, 오빠와 언니는 결혼을 했고, 둘이 합쳐 나에게 7명의 조카를 안겼다. 유(치원)졸이었던 나는 어느새 대졸이 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이사를 온 이웃집 아가의 성장을 함께 지켜봤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이사를 오고 이사를 갔다. 마침내 우리도 이사를 간다.
이사 며칠 전, 나는 엄마의 부름에 본가로 내려가야 했다. 엄마 혼자 이삿짐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으로 근 10년 동안 방치하다시피 했던 내 방을 좀 정리하라는 것이 이유였다.
엄마의 마음을 알 것도 같은 게, 이사가 결정이 난 후 약 1년간 근근이 '내려올 때 시간 나면 정리할 거 정리하라'는 말을 듣고도 미루고 미루었던 이유는 그 방에 남겨진 세월이 어지간히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거기엔 가족 구성원이 보아서 좋은 소리 들을 가능성이 없는 (...) 나의 지나간 엑스와의 편지들, 나의 비밀 일기장, 더불어 '중2'시절 남긴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여러 자취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별로 마주하고 싶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이삿짐센터 사람들에게 맡기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내려갔다. 다른 것은 그렇다 치고, 가장 짐이 될 책부터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정리를 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견했다. 그래, 이것이 이사의 묘미일 거다.
노트북 가방에 숨어서, 십여 년을 책장 가장 밑 선반에 박혀 있었던 녀석... (숙연..)이다. 사실 나는 저 노트북을 제것으로 사용하던 세대는 아니라서 좀 신기했다. 미루어 짐작컨대 오빠나 언니의 것이 분명하고, 그간의 잡 지식으로 단번에 노트북임을 알아차렸다. 한번 열어보려고 했더니 여는 부분의 고무가 녹아 열리지도 않고, 손에 덕지덕지 붙고 말았다. 지우는 데 애를 먹었다.
오빠에게 카톡으로 물어봤더니 'ㅋㅋㅋㅋ 유물이네'라고 답장이 왔다. 자기 건 아닌가 보다 했는데, 얼마 뒤 가족들이 다 모였을 때 주인은 언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 시절 그 물건.
아마도 오빠나 언니의 것을 막내의 권위로 빼앗아(...) 책상 서랍에 고이 모셔두고 있던 연필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거.. 굿즈라고 해도 될 법하다. 우리의 '굿즈' 수집은 한 두 해 동안 이루어진 문화가 아닌 거다. 지금만큼 다양한 취향을 파악하고 검색하는 것이 어려웠던 때에 수요를 탐색하고 타기팅(Targeting)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지, 그리고 그것을 제작해 낸 것을 생각하면 놀랍다.
어릴 때는 문구나 학용품이 내 자산과도 같지 않은가. 언니와 오빠에게 물려 받든, 부모님이 사주든, 내가 사든, 공책도 아끼고 연필도 아끼고 스티커도 아끼고... 그렇게 쓰지도 않고 모아 두었던 기억이 난다. 이 연필들도 그러한 연유로 서랍 속에 남아, 이제야 발견되었다.
부모님만큼이나, 오빠와 언니만큼이나, 나 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이 집에는 그만한 세월이 고스란히 있었다. 집에서 단순히 잠을 자고 밥만 먹은 게 아니었다. 우리는 그곳에 나이를 먹었다. 집은 우리를 재우고 먹이는 공간 그 이상의 어떤 것이라는 게 정말 분명해졌다.
해당 브런치북(과 글들은) 수정을 거쳐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로 독립출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