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이후 나는 타인에게 '집'을 설명하는 방법 하나를 터득했다. "아 여기는 지금 사는 집이고요, 거기는 진짜 집이에요."
말하면서 항상 웃음이 난다. 그럼 지금 사는 집은 뭔데. 가짜 집인가. 이런 이상한 표현에 아무도 진짜 집 가짜 집이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자취하는 사람이 가족의 집을 설명하기 위해 으레 이렇게 말한다. 이 표현은 떨어져 산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모님의 집'이라든가 '본가'라든가 '가족이 사는 집'이라는 말로 대체된다. 대체어를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동안 자연스레 지금 사는 집이 '나의 집'으로 대체되는 순간도 온다. 그럼 아까의 말은 이렇게 되는 것이다. "아 여기는 제 집이고요, 거기는 부모님 집이에요."
과연 그 전환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 전환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루어진다. 나의 경우는 이랬다.
먼저,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방이 없어졌더라, 같은 애교 수준의 변화가 그 시작이었다. 이 때는 엄마가 내 우편물을 종종 맡아놓기도 했다. 매번 가던 동네 카페에 갈 수 있고 매번 타던 버스도 탈 수 있다. 예쁜 카페를 검색해 놓고 집에 가는 날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가보는 것을 재미로 삼기도 했다. 내 방에 내 것이 아닌 짐들이 잠깐 머무르고 있을 뿐 달리 큰 변화는 없다.
그러다 내려갈 때 옷을 갖고 가지 않으면 입을 옷이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야금야금 옷을 운반해 오는 바람에 이제는 본가에 갈 때마다 옷을 들고 가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래도 아직 친구를 만나야 하므로 옷을 가져오는 수고로움을 견뎌야 한다. 이때쯤 되면 종종 부모님이 전화를 걸어, 집에 와서 '쉬라며' 언제 올 것이냐고 묻기 시작한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예약자에게 체크인 시간을 확인하는 것 마냥.
시간이 더 흐르면 집 비밀번호를 까먹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는 물론 현관의 비밀번호도. 일단 집과 관련된 비밀번호는 다 까먹는다. 번호는 기억 안 나고 본능적으로 누르면 맞다. 이 정도 수준에 이르면 집에 왔을 때 부모님이 정말로 반겨준다. 그리고 나도 부모님이 반갑다. 심지어 시간을 보낼 사람도 가족밖에 없어서 원래 집에 딱 붙어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도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 된다. 동네엔 내가 알고 있던 가게 하나 정도는 없어지고 버스 노선도 바뀐다. 힙한 카페 힙한 식당 그런 거 다 몰라서 찾아갈 곳도 없다. 나갈 일이 생기면 엄마 옷을 훔쳐 입는다.
그렇게 본가의 비밀번호를 잊고 산지 몇 년째, 지금의 나는 완벽한 방문객이 되었다. 부모님의 이사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목적지의 주소도 모르고 가는 방법도 모르니 꼭 무작정 길을 떠난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구글 맵 없이는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외지인이 되고야 만 것이다. 비로소 나는, '딸은 잠깐 00에서 살고 있어요'라고 소개되는 대신 '딸은 서울에서 살아요'라고 소개되는, '독립한' 딸이 되었다.
방문객으로서 언제나 적당한 환대와 환영을 보장받는다. 부모님이라는 현지인의 초청으로 낯선 곳에 발을 들인 여행자의 정체성을 갖고, 그들의 도움에 의존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는 부모님의 환대와 환영에 더 감사할 줄 알게 되고 그 감사함에 보답할 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집들이 초대에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예의이듯, 부모님의 초대에도 사랑을 표하는 것이 예의임을 배운다. 완벽한 방문객의 자격이 천천히 갖춰지고 있다.
해당 브런치북(과 글들은) 수정을 거쳐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로 독립출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