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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전쟁에서 승리하는이어 플러그

by 은진송

*주의* 집에서 술 게임, 술주정, 고성방가, 음주가무 카테고리의 시끄러움은 이 글의 '소음'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의 주거 형태에서 이러한 소음은 충분히 가해적이며 '소음 그 이상의 소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음에 대처하는 방법과 자세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방식을 취한다. 이어 플러그를 사는 일. 그나마 발휘하는 적극성은 차단하는 데시벨이 더 큰 쪽을 고르는 것이다.


수능 때문에 예민하던 고3 이후로 이어 플러그를 찾는 건 처음이었다. 다이소에서 이어 플러그를 찾아 헤매며, 차단 데시벨을 비교하며, 가성비를 생각하며, 웃음이 났다. 1천 원과 2천 원 사이의 고민이었지만 그 순간 누구보다 심각했다. 천만 원과 이천만 원 사이의 고민 같았달까. 이어 플러그를 사면서 이렇게까지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더 웃음이 났다. 생각해보니 고3 때도 본가에 굴러다니던걸 주워 써서, 내 손으로 이걸 산 건 처음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 예민하다는 고3 때도 안 샀던 이어 플러그를 사다니. 더욱이 이게 다 소음 때문이 라니. 억울한 기분은 덤이다.


오피스텔 구조가 방음에 취약하다는 걸 지금 사는 곳 바로 전에 살던 집에서 알게 되었다. 다세대 주택의 원룸에서 살 때는 못 느꼈던 소리가, 오피스텔과 똑같은 구조의 기숙사에 살 때도 못 느꼈던 소리가, 거기선 느껴졌다.


'쿵쿵'이 아니었다. 옆집의 모든 말소리가 들리는 수준이었는데, 정도가 심각해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의 새와 쥐가 되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왜 집에서 노래를 틀지 않는지 한탄해야 했고, 노래를 즐겨 듣지 않았던 나는 없던 취향을 만들어냈다.


당시 옆집은 '원통의 넓이를 구하는 수학 문제'를 풀 정도-이 또한 옆집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의 나이인 남자 청소년과 그의 부모님이 사는 3인 가구였다. 원치 않게 들리는 것은 생각보다 많았고, 나는 정말 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경비실에 연락도 몇 번 했다. 경비실에서 옆집에 연락하고, 옆집이 그 인터폰을 받고, 대답하는 소리까지 들려서 경악스럽긴 했지만.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은 것은 자칭 평화주의자이자 타칭 소심쟁이로서 일을 크게 만들기 싫었기 때문이다. 더 솔직히, 일을 크게 만들어서 내가 얻을 것이 없어 보였다. 먼저 어른 vs. 대학생, 3인 vs. 1인의 구도에서 나는 '대학생'과 '1인'을 맡고 있었고 무슨 이유에서건 질 것 같았다. 아쉽게도 이걸 타파해보려는 깡은 좀 없다.


이사할 날을 손꼽으며 그곳은 소음이 없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사를 했다.


나름대로 이사 오기 전에 점검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처음 몇 달은 조용했다. 어떤 소망이 감각을 무디게 했는지, 집에 잘 없어서였는지, 혹은 양 옆집이 1인 가구여서인지는 몰라도. 잠시 그랬고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음이라는 건 살아보지 않고는 절대 검증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오피스텔 구조의 집과 소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모양이다. 몇 차례의 시련 이후 감내하며 사는 것이 내 행복과 닿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차피 내 처치의 최대한은 경비실에 알리는 것이고,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쫄보인 데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기이한 이해심도 타협의 이유였다.


나서지도 못할 거 계속 신경 쓰다가는 화병만 난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답답해서 미치는 대신, 이어 플러그를 사기로 했다. 그게 가장 속 편한 일이니까.


사실 대부분의 화는 화를 낼 만한 대상이 생겼고, 거기에 '꽂혀서'다. 방점은 '꽂혀서'에 찍힌다. 무슨 소리가 들리다가도 다른 일에 몰두하면서 괜찮아지는 경험을 한다. 한 번 거슬리기 시작했을 때 계속 거슬리기 마련이지만 그 한 번의 순간에 빨리 감각을 돌려야 한다. 그러면 이 소음 전쟁은 유혈사태 없이 끝난다. 이어 플러그는 '그 한 번의 순간'에 요긴하게 쓰인다.


노력이 필요하긴 하다. 소음이 없었더라면 들이지 않아도 될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것 때문에 노력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에 "소음을 만들어 낸 그 대상이 화를 유발한 건데 그게 더 잘못 아닌가요?"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해하며 살아갈 필요는 있다.


내가 두 번째 집에서, 단독형 아파트에서 아랫집과 문제 생기면서 느낀 건데, 사람들이 다 착각하고 있는 게 여기 공동주택이잖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 현실을 받아들이고 애들한테도 그런 교육을 시켜야 되는 것 같아. 우리 애들은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는 해. 그런데 공동주택에 살고 있고, 앞으로 우리 애들도 공동주택에 살 확률이 높아. 그럼 여기서 사는 데 필요한 에티켓을 익히게 하고 여기서 노는 방법을 체득시키는 게 맞지. 그 예전 밑의 집 사람 보면 착각하는 게, 자기 집인데 왜 침해를 당해야 되느냐고 하거든. 당연한 거잖아. 윗집이랑 구조물을 공유하고 있는데. 침해당할 수밖에 없지.

- 진짜공간 173페이지 인터뷰


무언가 들릴 때마다 벽이 울릴 때마다 화를 내고, 분노하고, 문제 삼고, 짜증을 낸들 무엇이 해결될까. 옆집이든, 앞집이든, 어느 집이든 말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도무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쿵쿵 소리도 묵직한 걸 떨어 뜨리는 실수일 수 있고, 그걸 갖고 화를 낼 순 없는 거였다. 대화도, 실수도 누구나 살면서 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윗집이랑 구조물을 공유"하는 게 보편의 주거 형태로 자리 잡은 시대에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시대의 보편을 무시하고 나만의 보편을 만들 수 있는 자본과 권력이 없다. 이어 플러그로 시대의 보편에서 잠시나마 해방을 누린다면 그걸로 됐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우리 층 파티 퀸이 파티를 열었나 보다. 이 집은 심지어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우리 집 포함 복도를 울릴 정도로 너무 심각해서... 방문을 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이 집 때문이라도 코로나가 끝나기를 바라는 중)






해당 브런치북(과 글들은) 수정을 거쳐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로 독립출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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