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자린고비도 아니고
냄새가 난다. 오늘도 또 냄새가 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내가 냄새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맛에도 무디고, 향에도 무디고, 그래서 그런 감각들을 즐기며 살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 착각이었다. 누구보다 맛에 민감하고, 냄새에도 예민한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여러 가지 맛과 여러 가지 냄새 중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 괜찮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에 경험치가 조금 모자란 것뿐이었다.
도대체 이놈의 건물은 어떻게 지어졌길래 남의 집 저녁 반찬까지 알게 하는 거지? 냄새의 첫 경험 때는 정체모를 기이한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며 심각했었다. 이게 무슨 냄새지? 우리 집에서 나는 건가... 하며 걱정스러워하곤 했었는데 횟수가 늘어나고 어느 순간 식별 가능한 냄새가 맡아지자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 누군가의 집에서 오는 냄새구나. 라는 것을.
당연하겠지만 음식 냄새이거나 담배냄새인 경우가 많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냄새가 난다면 그건 음식 냄새이고, 창문을 열었는데 냄새가 난다면 그건 담배냄새다. 오늘도 담배를 피우시네, 오늘은 된장찌개를 드시네, 오늘은 김치가 재료인 요리를 하시네, 라며 아마 다 다른 사람일지도 모를 무명씨들은 나에게 그들 삶의 일부를 들킨다.
문득 하성란 작가의 <곰팡이 꽃>이라는 단편이 생각났다. 도시가 발전하던 시기에 쓰인 소설로 소통의 부재와 인간의 소외 그런 것을 묘사한 작품이라 기억한다. 주인공은 이웃의 쓰레기를 뒤진다. 쓰레기가 무엇보다 진실을 말한다면서. 나는 쓰레기를 뒤지 않고서도 당신이 무얼 먹었는지 알고 있다! 설령 그게 누구인가를 지목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가끔씩 고마울 때도 있다. 요리를 하지 못하고 안 하는 사람으로서, 때우는 식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맛있는 냄새가 밀려올 때 나는 굴비를 올려다보며 밥을 먹는 자린고비 영감이 되는 것이다. 아마 굴비도 냄새가 대단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가끔씩 덕분에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어디서 나는 지 모를 냄새는, 역시 어디서 나는 지 모를 소리와 함께, 아직 감각 신경도 멀쩡하고 세포들도 멀쩡하고 뇌도 멀쩡함을 알린다.
요즘은 더 고맙다. 코로나 증세로 미각과 후각이 상실되기도 한다는데 후각 기능엔 별 문제가 없구나, 다행인 걸....
그래도 여전히 이해는 할 수 없다. 냄새는 어디로부터 나와 어떻게 들어오는 걸까.
해당 브런치북(과 글들은) 수정을 거쳐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로 독립출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