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배고파서 누룽지로 때우는 게 뭐가 대수라고

요리가 싫은 게 아니고 설거지가 싫다.

by 은진송


초등학생 때였나, 어떤 맥락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담임선생님이 손들기를 시켰었다. 그때만 해도 이것저것에 대한 응답이 '손들기' 하나로 빠르게 마무리되던 시절이었다. "집에서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사람", "아빠가 하는 사람", "내가 하는 사람", "형제자매가 하는 사람" 대충 그런 순서였는데, 나는 어디에도 손을 들지 않았다. 초등학생인 내 생각에 우리 집은 '식기 세척기'가 했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아주 얼리어답터인 아빠 덕분에 집에는 얼음 나오는 냉장고와 식기 세척기가 있었다. 그때는 식기 세척기가 설거지를 다 해주는 줄 알았다. 식기를 넣고, 싱크대를 청소하는 엄마의 노고는 알지도 못한 것이다. 세척기가 핵심적인 설거지를 하더라도, 싱크대에서 접시를 다루는 정도의 세척은 했어야만 했는데도 희한하게 엄마는 다른 모든 집안일은 시켜도 설거지는 잘 시키질 않았다. 내가 너무 귀해서라기 보다는... 제 몸도 못 가누는 꼬맹이한테 그걸 시켜서, 싱크대에서 바닥으로 물이 흐르고 제대로 뭔가가 안 된 것 같은 그 상황을 엄마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딱 그 성질을 내가 닮았다. 설거지를 하면 어쩔 수 없이 물이 튀는 데 '다 하고 닦으면 되지'하며 넘어가지지 않는 것이다. 거기다 가끔 놀러 오는 친구들이 자기가 해주겠다고 하는데도 싫다고 거절하는 판국이니 더 가관이다. 마치 나를 못 믿었던 엄마처럼 나는 해주겠다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한다. 사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의 까탈스러움에 대한 수고는 온전히 내 몫인 게 맞다. 그걸 타인이 짊어지게 하는 건 나에게도 남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수세미를 사용하는 방식도 마음에 안 들고, 마무리로 헹구는 방식도 찜찜하다. 배수구에 음식물이 차면 빨리 걷어낼 생각만 하면서 조마조마해하고 있다. 고마움은커녕 지적질을 하게 되니, 어떻게 주변인들에게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나 설거지가 고통스러운 일이라 요리를 안 하게 된다. 요리를 하더라도 요리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요리만 한다. 싱크대의 깨끗함이 유지될 수 있는 그런 것들. 그러면서 요리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고 자기 합리화를 일삼는다. 까탈스러우면 부지런이라도 떨어야 하는데 까탈스러우면서 게으르기까지 한 문제적 존재인 나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방법으로 싱크대를 '모셔' 놓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누룽지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엄마. 밥도 먹을게. 진짜로.




해당 브런치북(과 글들은) 수정을 거쳐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로 독립출판하였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