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미룰 때까지 미뤘다가 한꺼번에 빠는 습관을 갖고 있다. 일주일을 빨래 돌리고 빨래 너는데 시간을 쏟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일주일, 가끔은 좀 더 오래 빨래통을 꾹꾹 채웠다가 빨래를 하곤 한다.
공식적으로 변명해보겠다. 빨래를 언제 하는 것이 좋은지를 판단하기도 전에 습관이 형성돼버린 거라고. 세 살 버릇은 여든까지 가는데 열일곱의 습관은 언제까지 가려나.
내 빨래 습관은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기 쉽고, 돈을 절약하고, 습기를 잘 견디는 쪽으로 만들어졌다.
1) 고등학교 기숙사: 공용 세탁기 사용. 빨래를 룸메이트들이랑 모아서 함. 한창 공부하던 시절이라 당번을 정해가며 빨래를 돌림. 되도록 당번이 돌아오는 텀이 길면 좋음. 나는 아니어도 다른 애들은 열공 모드였음. 이건 비밀인데 가끔 빨래하기 싫어서 공부하는 척함.
대학교 기숙사 1: 공용 세탁기 사용. 빨래는 개인플레이. 밖에서 놀 시간은 있지만 빨래할 시간은 없음. 빨래하려고 갔는데 남들도 다 놀고 들어와서 빨래하는지 빈 세탁기가 없음. 꽝 다음 기회에. 며칠 지나서 다시 빨래하러 감. 오늘도 놀다 들어옴. 남들도 다 놀고 들어와서 빨래하는지 빈 세탁기가 없음. 꽝... ∞
2) 대학교 기숙사 2: 코인 세탁기 사용. 돈.
미국 1: 코인 세탁기 사용. 돈.
미국 2: 코인 세탁기 사용. 돈.
빨래 많이 해서 돈이 떨어졌다는 얘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동의함.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커피를 끊었으면 되지 않았을까 싶음.
3) 자취방 1, 자취방 2, 자취방 3: 항상 가습기 대신 제습기가 필요했음. 빨래를 자주 하면 할수록 고통만 늘었음. 해 잘 드는 곳에 살고 싶음.
이번 집에선 먼지다듬이랑 동거 중. 날씨 따뜻한데 습하면 더 잘 나온다고 해서 따끈한 날에도 건조기를 겁나게 돌리고 있음.
안다. 이 모든 상황 속에 처하더라도, 영화 <소공녀>의 미소가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수 없듯, 빨래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나는 아니었고, 나는 그냥 빨래를 좀 덜 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 덕에 속옷과 수건과 옷이 자꾸만 늘었다는 점이다.
다시 변명하겠다. 귀찮아서 그랬습니다... 귀찮아서요.
해당 브런치북(과 글들은) 수정을 거쳐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로 독립출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