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전혀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해졌다. 재택근무가 대표적이다. 개념을 더 확장하자면, '재택ㅇㅇ'이 당연해진 거다. 그게 어떤 일이든 실행 공간이 집이라도 더이상 이상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집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공간 중에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고, 집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미디어는 '집'과 관련한 콘텐츠를 쏟아냈다. '재택근무'는 그들 콘텐츠의 좋은 아이템이 되었다. 재택근무 know-how, 재택근무 인테리어, 재택근무 장단점....
무엇보다 이 재택근무의 콘텐츠의 핵심은 재택과 근무의 상관관계를 풀어내는데에 있다. 집이라는 공간과 일이라는 생산성을 동시에 잡는 것, 그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공간은 어떻게 꾸며야 할까, 같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든 질문의 근본적 의제다.
이 질문들의 대답으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건 '공간 분리'다. 공간 분리는 재택 근무가 아니더라도 삶의 질을 올리는데 필요하지만, 재택 근무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공간분리를 하면 생산성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어딘가에서 읽은건데,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공간 분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할 수야 있지. 그러나 똑바로 말해야 한다. 작은 집에서는 공간을 분리해도 생산성으로 이어지진 않을 수도 있다고.
재택근무의 생산성은 공간 분리가 아니라 큰 집에 있고, 큰 집을 임차하거나 살 수 있는 돈에 있다. 집에서 얼마나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완벽하게' 분리하느냐. 개별 공간이 그 역할대로 기능하게끔 구현하느냐. 그게 핵심이고, 이를 위해선 공간을 나눌 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공간 분리는 공간이 있어서 할 수 있다는 걸 다들 잊는 것 같다.
17제곱미터의 내 방에서 공간을 어떻게 분리하든 그 옆은 침대다. 일단 책상에 앉으면 모드가 바뀐다고 스스로 마음 먹을 수 있어도, 시야까지 차단하긴 힘들다.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언제든지 발을 뻗어 침대로 굴러갈 수 있는 것이다.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마음을 먹는 사람들은 마음을 먹어야 배부른 사람들이고 마음을 먹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배가 부르니까. 다른 걸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원치 않은 선택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마음을 굳게 먹고 결심하는 대신, 원치 않은 선택을 원하는 선택으로 바꿀 수 있는 이들도 있다. 난 그들이 아니라서 오늘도 마음을 굳게 먹을 뿐이다. 다른 건 변해도 마음의 세기는 변하지 않겠지.
해당 브런치북(과 글들은) 수정을 거쳐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로 독립출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