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40만 원과 바꾼 것

by 은진송

청파동은 지대가 참 높다. 친구 집에 가끔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끊임없이 오르고 올라야 그 집에 도착한다. 그 건물엔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없건만 가장 높은 곳에 산다. 걔는 월세가 40만 원이라는 이유로 그 오르 내림 정도야 가소롭게 여기고 직주근접의 장점에 주목하여 한 다세대 원룸에 입주했다. 월세 40만 원의 대가는 종아리 알이 굵어지거나 허벅지 근력과 폐활량이 늘어나는 정도인 줄 알았다. 겨울이 되자 그 대가는 훨씬 더 큰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친구가 어느 날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이른바 눈퉁이가 밤탱이가 되어, 누구에게 맞았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모양새였다.


-도대체 꼴이 왜 그래? 맞았어?

-넘어짐

-??? 어떻게 넘어지면 거기가 그렇게 멍드는데


눈이 시퍼렇게 멍든 꼴을 보자니 황당했다. 넘어져서 저기에 저렇게 멍이 들었다니. 어떻게 넘어져서 저렇게 된 걸까 어디에 넘어진 걸까. 보통의 짐작으로는 원인과 결과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의 집에서 다른 골목으로 가려면 '올라간다', '내려간다'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가파른 경사의 언덕이 있다. 겨울엔 눈이 오고, 역시 이번 겨울에도 눈이 왔다. 기온이 떨어졌고 눈은 얼었다. 그 언덕에 눈이 쌓였고 눈이 얼었다. 그래서 친구는 넘어졌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 가파른 곳을 오르려는 대범한 행동 때문에 눈에 피멍이 들고야 말았다.


-야 큰일 날 뻔했네. 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지 말라는 어른들 말씀 틀린 것 없다.

-ㅡㅡ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조금 비통한 심정이었다. 월세 55만 원의 집이 갖고 있을 엘리베이터와 월세 65만 원 이상의 집이 가진 큰길 역세권의 위치를 포기하고, 월세 40만 원의 언덕을 선택한 것은 누구의 강요도 아니었다. 친구 스스로 포기할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정하여 선택한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 '포기'안에 안전까지 포함되어 있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가 월세와 타협하며 포기하는 것들의 정체는 겨울이 오고 나서야 드러났다.





해당 브런치북(과 글들은) 수정을 거쳐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로 독립출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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