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의 의미

by 은진송

처한 신세와 달리, 최측근으로부터 '오늘의 집' MD해도 되겠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인테리어에 중독되어 있다. 정확히는 인테리어 브랜드에 중독되어 있다. MD들은 브랜드 발굴하고 돈이라도 받지, 나는 알아봐야 돈을 쓰는 목적밖에 달성할 수 없는데도 브랜드 발굴을 끊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돈을 쓰는 것도 마음먹은 만큼 달성할 수 없는 목적이다. 사지도 못하는 가구들을 감상하고 고르는데 꽤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이 인테리어 구경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이걸 보다 보면 갑자기 우리 집이 정말 별 거 없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꾸며 놓고 가구 배치도 센스 있게 했다고 생각했어도 비싼 가구들이 척척 들어앉아 있는 넓은 집들을 보면 금세 허탈해진다.


허탈한 마음이 들 때는 재빨리 상황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허탈함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른 감정으로 채울 수 있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가구 배치와 새로운 가구로 방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결심한 순간 타격은 사라진다. 남들 인테리어를 보며 비교하는 대신, 보고 배우며 내 방을 꾸밀 궁리를 하게 되니까. 뭐. 그렇다고 20만 원짜리 조명을 딱딱 갖다 놓은 집들을 보며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건 통장 잔고를 보며 자연스럽게 이겨내는 부분이다.


작은 공간에 가구를 계속 들여오는 건 미련한 짓이기 때문에, 그리고 새 가구를 사려면 돈도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 집에 있는 소가구나 물건을 '당근'으로 처분한다. 그리고 사고 싶은 걸 고른다.


이 시점에서 다신 하고 싶진 않지만 결국 다시 하게 되는 결정이 있다. 바로 조립 가구를 사는 결정이다.


힘을 잘 못 쓴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진 수준이고, 고등학교 때는 상태가 심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기숙사 청소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매트리스를 들어 올리질 못해서 룸메이트들에게 민폐를 끼친 후 매트리스 들기에서 항상 열외였다. 고맙다 친구들.


그런 나인데, 어떻게 갑자기 뚝딱뚝딱 조립을 잘하겠나. 택배 오면 들기도 힘들다. 되도록 완제품을 사고 싶어서 열심히 검색한다. 정말 진심으로 완제품을 사고 싶지만 가격 때문에 조립 가구를 살 수밖에 없다. 비슷한 디자인에 값이 다르다면 싼 걸 고르는 게 인지상정이고, 십중팔구는 조립 가구다. 아니, 열에 열은 조립 가구다.


언제 한 번은 이런 적이 있다. 이때의 경험 때문에 조립 가구는 꼭 조립 설명서를 보고 나서 사게 됐다. 수납 선반 하나를 샀는데 막상 조립하려고 펼쳐보니 망치질을 해야 했다.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다이소가서 망치도 사고, 최측근 불러서 망치질을 했는데도 조립은 실패였다. 그 기억이 너무 고단하게 남아있다. 망치질하는 가구는 절대 사지 않으리라 결심한 계기가 되기도 했고, 조립은 반드시 확인해보고 사야 한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다.


그래도 해보니 실력은 느는 것 같다. 얼마 전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플라스틱 서랍장을 조립했다. 무거운 가구가 아니었지만 잡아주는 사람이 없는 게 제일 힘들었다. 나 홀로 조립의 슬픔이란 무겁고 어려움의 문제가 아니라, 붙잡아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조립을 혼자 해내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혼자 조립하는 내내 아, 혹시 조립의 '조'는 한자로 '만들 조'가 아니라 '도울 조'아닌가, 그런 의심을 품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사고 싶고 또 사고 싶던 원형 테이블을 8만 원 주고 샀다. 다리만 끼우면 되길래 쉬울 줄 알았는데 쉽기는 무슨... 손으로 육각 랜치 돌리다가 손에 감각이 사라졌다. 전동 드릴도 빌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하는 건지 감을 못 잡겠던 걸? 갑자기 아빠 생각이 나서 조립 도중에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울 아빠는 만능인데. 집에서는 아빠가 해줄 텐데.





해당 브런치북(과 글들은) 수정을 거쳐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로 독립출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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