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말하길 그 사람의 본성은 밑바닥이 드러날 때 비로소 보인다고 한다. 그간 꾹꾹 눌러 담았던 내용물을 비워버리면 그릇의 깊이와 모양새를 정확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일까? 이건 비단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인 것 같다. 내가 나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던 때는 나 자신을 올곧이 담아내었을 때가 아니라 돌부리에 넘어져 비워졌을 때니까. 내가 나라고 믿었던 것들은 하릴없이 흘러 말라갔고 그 안에서 아집과 같은 모습을 보았다. 내 안의 텅 빈 공간을 상실감으로 채우는 대신 생각해본다. 삶은 사실 채워나가는 게 아니고 비워가는 게 아닐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