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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엣지정 Mar 06. 2022

휴심정원(休心庭園)

힐링캠프 오프 앤 온

지난 5월에 춘천으로 이사를 했다.

대면 업무 비중이 컸던 나는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동안 책을 읽거나 웹서핑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예측하는 정보는 넘쳐났고, 그중에서도 건축, 특히 주거환경의 변화를 다룬 콘텐츠들을 눈여겨보았다.
집은 출장이 잦았던 사회 초년 시절부터 여행을 할 때마다 늘 큰 관심사였다. 캐리어 하나로 몇 달을 살 수 있는데, 꼭 한 곳에 머물 필요가 있을까? 비단 게르(Ger)나 노매드(Nomad)까진 아니더라도 세상은 넓었다.
천성이 게으르고 자연이나 사물,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내게 한시적인 여행은 그저 먹고 쉬는 휴양 정도였고, 한 달은 살아봐야 그곳을 여행했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이후 "제주 한 달 살아보기"식의 여행 프로그램이 등장했을 때 난 이미 "몇 년 살아보기"로 버킷리스트를 수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레이어드 홈(Layered Home)"!
집의 기능이 분화되거나 중첩되면서 크기와 구조가 변하기도 하고, 아예 업무와 휴식을 분리해 도시와 근교에 두 개의 집을 갖는 게 트렌드가 될 거란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 같았다.

춘천은 딸이 3년째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다. 기숙사 입퇴사 때마다 오고 가서 낯설지 않았다. 그보다 더 예전, 한 남자와 비가 오면 불쑥 찾아 사랑을 속삭였던 곳, 같이 살아보자 한 곳이다. 물이 부족한 내 사주에도 잘 맞는 호반의 도시, 춘천. 내 꿈의 여행지로 금상첨화인 도시였다.
서울에서 나흘이나 닷새, 춘천에서 이틀이나 사흘. 일주일에 한두 번 경춘로를 운전하며 거대한 풍광 속에 한없이 작은 나를 바라본다. 새삼 허무감에 빠진다. 내 삶을 치밀하게 묘사해본 적이 없어 헛 것이란 느낌이 드는 걸까? 노트를 사서 제목을 달았다. 독후감 노트, 영화 노트, 고전 공부/경전공부 노트, 문장 수집노트, 여행노트.... 이 복된 삶도 한순간 한 부분을 치열하게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라는 진리와 불안 앞에 섰다.
늦은 봄에 와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통과해서 겨울에 들었다. 눈동자 색깔이 같고 같은 언어를 쓰는 옆집 할머니가 늙은 호박을 깎아 우리 담도 되는 벽 아래 줄줄이 널어두었다. 알면서도 묻는다.

"호박이에요? 채소밭은 언제 다 정리하셨어요?"
처음엔 전화번호도 없이 사나흘씩 집 앞에 세워둔 차에 신경이 곤두섰다.

'이런 무식한 촌뜨기를 봤나?'
차 앞에다 큼직하게 써서 붙였다.
'대문 앞에 외부차를 세우지 마시오.'
차주는 함흥차사인데 앞집 아저씨가 한마디 한다.
"여기 네 땅 내 땅이 어딨어요? 단지 당신 집 대문 앞이란 것뿐이지'"
까칠한 이방인이 대대로 살아온 현지인에게 덕 볼 일이 뭐가 있을까?.......
현관문만 열면 마주치는 이웃과 인사를 나눠본 게 얼마만인가? 그들의 사계절을 내 삶에 녹여낸 춘천살이를 적어보리라. 한 발 짝 더 다가서 보자. 익숙한 것도 낯선 것을 대하듯 봐보자.
춘천방송국 주파수를 타고 BTS의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이 흘러나온다.

떠나고파 anyway/뭐 방법이 없어/이 방이 내 전부/그럼 뭐 여길 내 세상으로 바꿔보지 뭐/시선을 낮추고 어디든지 막 zoom/여기가 이랬나 싶어/괜히 추억에 잠겨/오래된 책상도 달라진 햇빛도 특별해 보이네/떠나볼까 Let me fly to my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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