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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잔 Jan 27. 2020

울고 싶지만 우울해지고 싶지는 않을 때

드라마 ‹빨간 머리 앤›

이 글은 틈틈이 뉴스레터에 기고한 글입니다.


빨간 머리 앤›은 제 취업준비생 시절을 지켜준 드라마입니다. 그저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고 시작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앤과 마릴라, 매슈를 따라 울고 웃고 있었더랬죠. 이 시리즈는 한바탕 눈물을 뽑아도 울적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잃어버린 어떤 감정이 돌아와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아름다운 배경, 섬세한 고증, 풍성한 연기력 대잔치까지. 드라마 ‹빨간 머리 앤›을 소개합니다. 


아름다운 마을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랑스러운 앤의 첫 등장. 출처: ‹빨간 머리 앤›


이야기는 커스버트 남매의 초록 지붕 집에 실수로 앤이 입양되면서 시작합니다. 고아원을 떠나 매슈와 함께 애번리로 가는 길, 앤은 매슈의 암말에는 ‘벨’, 벚나무 길에는 ‘환희의 하얀 길’, 배리 연못에는 ‘반짝이는 물결의 호수’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매슈의 마차 위에서 풍경을 돌아보며 '지금 자신의 빨간 머리 빼고는 완벽에 가깝게 행복하다'고 조잘거리는 앤에게 어떻게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앤의 해일 같은 감수성은 애번리를 적시기 시작합니다.


앤의 친구 언니 프리시가 사랑 없는 가부장제의 굴레에서 탈출하는 순간입니다. 저의 최애 장면이자, 시리즈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이죠!  출처: ‹빨간 머리 앤›


앤은 애번리에서 성장하면서 많은 편견과 부딪칩니다. 19세기 애번리는 인정 넘치는 도시지만, 여전히 많은 형태의 혐오가 편견, 무지, 때로는 동정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앤은 고아 출신이자 여자아이로서 사회의 편견과 싸우고, 다른 인종 또는 정체성을 가진 친구들의 편에 고민 없이 섭니다. 어른들이 세워 놓은 편견의 울타리가 무색하게 ‘다른’ 사람들과 쉽게 친구가 되는 앤, 그건 아마 앤의 인간을 향한 순수한 선의 때문이겠죠. 저는 이 인간애가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밑색이자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부 학교 대신 대학에 진학하는 여자 아이, 부활절을 함께 보내는 다른 피부색의 가족들, 여성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사설 그리고 그 기사를 지키기 위해 행진하는 학생들... ‹빨간 머리 앤›은 3개의 시즌 내내 21세기 우리에게도 유효한 쟁점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순서대로 시즌 1,2,3의 포스터. 쭉쭉 자란 앤이 보이시죠? 출처: ‹빨간 머리 앤›


이 시리즈의 또 다른 빅재미는 시즌을 지나며 쭉쭉 크는 배우들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가령 커스버트 남매의 일손을 돕는 쪼그만 프랑스 소년 제리는 3년 만에 폭풍성장해 공공연히 마을에서 '키 정말 큰 아이'가 됩니다. 첫 화에서 주님께 아름다운 여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어린 앤이 마지막 화에서 정말 성숙한 청소년이 된 모습을 보면 감격스럽기까지도 하죠. 물론 성장한 건 앤뿐만이 아닙니다. 무정한 취준 생활에 지쳐 메마른 가슴으로 침대에 누워 천장의 별만 세던 저 또한, 이제는 출퇴근길에 넷플릭스를 독파하는 훌륭한 주니어 직장인이 되었으니까요. 이 시간을 함께 해준 앤에게 감사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앤을 만나 보길 바랍니다. 



�What CBC &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Where 넷플릭스에서

�Why 잃어버린 감수성 찾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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