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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잔 Jan 14. 2021

어떤 사랑의 원형, 영화 <쉘부르의 우산>



어떤 영화는 오직 아름다워서 눈길이 가기도 합니다. 이 영화도 그런 영화였어요. 동화 같은 색감 속 아름다운 두 남녀의 모습. 발음해보면 입속에서 솜사탕처럼 부서지는 뜻 모를 예쁜 이름. 1964년에 만들어진 프랑스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입니다.



영화는 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 쉘부르에서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를 담습니다. 영화에는 우산 가게 집 딸 쥬느뷔에브, 자동차 정비공 기, 부유한 보석상 카사르와 기의 대모를 보살피는 마들렌까지 네 명의 청춘남녀가 나옵니다. 등장인물만 봐도 벌써 엇갈리는 사랑의 관계도가 머릿속에 그려지죠. 열렬히 사랑하며 미래를 함께 그려가던 쥬느뷔에브와 기. 알제리 전쟁으로 기가 징집되면서 둘은 멀어지게 됩니다. 엄마의 잔소리도, 나라의 부름도 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두 사람의 사랑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실은…엄청나게 복잡하고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답니다. 21세기 드라마의 2중 3중 트릭으로 점철된 복잡한 플롯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아마 저처럼 <쉘부르의 우산>의 이야기가 플랫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이 영화가 1시간 30분이 아니라 16부작이었으면 이 모든 전개를 쉽게 납득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는 다사다난했을 사랑 이야기를 뼈대만 남긴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무려 60여 년 전의 영화라는 걸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게 우리가 지금 접하는 모든 사랑 이야기의 원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 버린 수많은 사랑의 모양들. 그 원형 중 하나였을 이야기를 60년이 지나 보는 경험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영화를 보며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들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사랑하고, 갈등하고, 이별하는 사람의 마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우산 디자인(ㅎㅎ), 등장인물이 걸치고 다니는 크리스찬 디올 의상의 시대를 초월하는 세련미… 그리고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가득 채우는 색과 음악의 아름다움 말이에요! 
               

영화는 시종일관 세상에서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색은 다 끌어다 쓴 작품처럼 빛납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나 되게 칙칙하게 살고 있었네 하는 생각이 잠깐 들 정도로요.) 인생은 영화라는데, 제가 주인공인 영화를 고를 수 있다면 이런 색이면 좋겠다 싶어요. 그 위에 세기의 OST로 꼽히는 <I Will Wait for You>가 얹혀집니다. 인물의 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루어진 영화에서 음악은 영화의 숨이 됩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음악의 속도로 호흡하고, 음악이 멈출 땐 같이 변곡점을 맞으며 쉘부르의 사랑 이야기에 서서히 스며들었어요.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의 감상평을 찾아보다가 인상적인 표현을 발견했어요. 'A Finite Forever'. 유한한 영원. 영화 속에 담긴 쉘부르의 계절들을 훌륭하게 압축한 한 마디였어요. 사랑은 원래 다 이런 것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랑’의 영화화는 어떤 작품인가요?



이 글은 2020년 10월 29일 틈틈이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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