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리얼리티 쇼 <퀴어 아이>
날이 추워져 몸이 움츠러든 탓일까요. 부쩍 땅을 보며 걷는 일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엔 없던 주름이 또 하나 생긴 것 같고, 어깨는 너무 무겁고, 나를 기다리는 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많은 하루. 그래서 요즘은 퇴근 후 다섯 남자와 함께 집 나간 자신감을 되찾는 시간을 가져요. 대부분 웃기고 이따금 감동적인 메이크오버 쇼 <퀴어 아이> 입니다.
<퀴어 아이>는 2003년에 히트한 동명의 메이크오버 쇼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멋쟁이 5인방'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각 분야의 전문가 게이 남성 다섯 명이 주인공인데요. 중요한 이벤트를 앞두고 삶의 전환점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의뢰인을 만나 헤어&메이크업, 패션, 홈인테리어, 요리, 마음챙김까지 망라하며 삶을 리셋해줍니다.
이 쇼의 포인트는 그들의 처방이 겉모습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멋쟁이 5인방이 정말로 바꾸고 싶어 하는 건 의뢰인들의 움츠러든 마음입니다. 루푸스병으로 인해 붉은 피부가 자신 없는 57세 운전 기사, 자신이 교회를 이끌 리더십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이 목사, 일이 바빠 딸과 남편에게 부채감을 갖고 있는 워킹맘 의사… 다섯 남자는 한 명씩 돌아가며 의뢰인과 시간을 보냅니다. 함께 새 가구를 고르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산책을 하고 요리를 배우면서 그들의 마음을 읽고 잃어버린 자신감을 북돋아 주죠.
"못생긴 건 못 고쳐요"라고 말하는 57세 독신남에게 "당신은 뚱뚱하고 못생긴 늙은이를 보지만 우린 안 그래요"라고 답하고, "난 똑똑한 여자지 예쁘거나 매력적인 여자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하는 워킹맘 의사에겐 "똑똑하면서 예쁠 수 있다는 생각은 생각은 안 했군요"라고 말하는 그들. 멋쟁이 5인방의 시종일관 밝은 목소리와 어떤 자조도 기어코 칭찬으로 돌려주는 밝은 에너지, 조그만 변신에도 리액션 폭발하는 환호성과 호들갑은 의뢰인들이 마침내 새로운 옷을 입고 자신있는 포즈로 살랑살랑 춤을 추게 만드는 마법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요.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이 굉장히 섬세하다는 점입니다. 덤불 같이 자라난 의뢰인의 수염을 다듬어 주며 “당신은 좋은 점이 많아요. 하지만 좋은 점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아요.“ 라고 그루밍의 이유를 꼭 설명해 줘요. 안경을 쓰는 의뢰인에겐 안경을 벗기는 대신 조금 다른 스타일의 안경을 권해 줍니다. 의뢰인이 모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바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벗으세요!"라고 말하고, 그 사람 고유의 스타일을 존중하면서 그 안에 숨어 있던 좋은 점들을 찾아 꺼내 줍니다.
용기를 모아 쇼를 만든다면 이런 모양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 소수자가 전면에 서는 일이 드물었던 시절 게이 남성 다섯 명을 스타로 만든 쇼. 크고 작은 이유로 마음이 움츠러든 사람들이 '멋쟁이 5인방'의 문을 두드릴 작은 용기를 내기만 하면 그걸 큰 자신감으로 돌려주는 쇼. 다섯 남자와 함께 웃고 울다 보면 어느새 구겨진 마음이 어느 정도 펴지는 기분이 듭니다. 글쎄, 우리 사실 꽤 괜찮은 사람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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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0년 11월 26일 틈틈이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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