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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타치 Nov 13. 2023

야무진 김작가의 어느 화려한 북콘서트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 맑음

북토크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아들 태하(가명)가 있는 산호세까지 들리는 일정으로 빠듯하다. 태하가 좋아하는 김치랑 굴비챙기느라 이민 가방을 꺼냈다. 어제는 비가 와서 거추장스러웠는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스하다. 인천 공항까지 동행했던 남편은 산호세로 날아갔고 나는 오늘 밤에 있을 북토크로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남편은 은퇴 전부터 세워왔던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첫 번째 여행지였던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이번엔 미국이다. 나의 미국 출장을 이유로 목적지를 아이슬란드에서 바꿨다. 이번 여행경비는 미국 출판사와 계약하면 받은 내 돈으로 충당했다. 내가 돈을 벌고 남편이 주부이길 얼마나 바랐던가. 요리도 잘하고 지인들을 만나기보단 식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행복해하는 남편에게 딱이다. 오랜 꿈은 두 아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이뤄졌지만 말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

혼자일 땐 아침 식사로 룸서비스를 선호한다. 편한 옷차림으로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먹을 수 있다. 레스토랑에 가면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애써 미소를 지어야 하는 인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민낯이라 자꾸 고개를 떨구게 된다. 몇 년 전까진 그리웠던 인사이지만. 북콘서트 바로 전에 메이크업을 방 받아야겠다. 네온사인으로 반짝였던 어제의 밤과 너무 다른 아침이다. 호텔의 회전문을 통과하니 뉴요커들은 눈인사는커녕 무표정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영어가 본토인 나라에 오면 긴장했었다. 아무리 세계공용어라지만 그들이 말하는 속도를 따라가려면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


몇 해 전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유럽에 살며 언어 때문에 아쉬웠던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에르메스 가방을 걸친 누구보다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가 한없이 부러웠다. 나라 간에 이동이 자유로워서 한 나라처럼 지내는 유럽은 세 내게 언어를 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많은 친구를 사귀고 그들의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 수 있었던 기회를 자주 놓쳤다. 귀국하자마자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머릿속에 갇혀만 있고 쏟아내지 못했던 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답답함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꾸준히 공부했는데 마치 오늘을 위해 준비해 온 것만 같다. 통역 없이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북콘서트다. 미국에 번역 출간 된 책으로 초청을 받았다.


행사는 저녁이라 낮시간을 이용해서 뉴욕 공립도서관에 들렀다. 두 마리의 용맹한 사자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오고 싶었던 곳이다. 함께 읽었던 그림책 속에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사자상을 직접 보고 싶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발 밑에 깔려있는 빨간 융단 카펫은 나를 위한 것 같다. 레드카펫에 위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입고 우아하게 손을 흔드는 배우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내 책이 꽂혀 있을까. 컴퓨터로 목록을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책을 찾아 달라고 했다. 시침이 뚝 떼고 내 책의 제목을 쓴 메모지를 건넸다. 잠시 후 직원이 대답했다.

"모두 대출 중입니다."

Oh, My God.

나도 모르게 영어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이 적재적소에서 발휘되다니.

열심히 하다 보면 뭐가 되든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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