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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타치 Jan 03. 2024

가만히 들어주었다

나의 발견

알고 지내던 이들과 소소하게 그림책 모임은 해봤지만 성인 대상의 정식 수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림책 수업을 제안받았을 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수락했다. 이놈의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하루 이틀 지나니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이 수강할지, 그들은 그림책에서 뭘 원할지, 수업에 바라는 것이 무엇일지. 물론 불특정 다수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기란 어렵다. 강좌의 제목부터 정하고 내용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림책에 빠진 경위를 더듬어본다. 한 편의 서사가 몇 장 되지 않는 텍스트에 담겨있다. 가르치려 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알게 했다. 그림이 주는 울림이 엄청 크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함께 읽고 서로의 느낌을 나눌 수 있다. 같은 텍스트를 공유했는데 서로 다른 감정을 얘기하며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솔직한 감정을 얘기했다는 것만으로 후련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감정보다 이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에 살며 마음이 아픈 사람을 자주 만난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는데 알고 보면 상처투성이인.


우리는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감정 표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삼키고 억누른 감정은 결국 터지고 만다. 동료들과는 껄끄러운 대화를 나누지 않으려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감정을 폭발시킨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쿠키 한 통을 다 먹어치우기도 한다.

                                                                                                  <감정의 발견> 마크 브래킷 지음


'두려움'에 대해 얘기하는 그림책을 읽고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한다. 되도록 뾰족한 질문을 통해 경험한 어느 순간을 건져 올리며 말하다 보면 눈물일 짓거나 활짝 웃기도 한다. 눈을 마주치고 최선을 다해 경청하며 반응한다. 나는 원래 말하는 쪽보단 듣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군더더기 없이 결론만 말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강사님은 너무 섬세하고 따뜻해서 마음을 여는 힘이 있어요."라는 피드를 받았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읽었던 그림책의 사진을 열심히 찍고 수업 후기도 열심히 적으시더니 정이 많은 분이다.

수강신청만 하고 안 나오던 수강생에게 다음 시간엔 꼭 오시라는 문자를 보냈더니 신경 써 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바로 출석했다. 세 번이나 연속해서 빠져서 어색할 줄 알았는데 너무 편안한 시간이었다고 전해주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수업을 할수록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지난 시간 동안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 갈까하는 괜한 걱정을 했다. 나는 그저 가만히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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