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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타치 Jan 22. 2024

제 머리는 돌이에요

방학이다. 돌봄 교실의 아이들은 학교에 온다. 또래들이 늦잠 자는 시간에 아침잠을 설치며 나오느라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봤다. 모두들 엄마, 아빠보다 일찍 일어났단다. 밤늦게까지 놀다가 잤다는데 피곤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2017년 겨울, 북쪽의 유럽에서 맞이했던 첫 째날이 떠오른다. 낮 3시쯤부터인가 해가 떨어지며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고 아침 9시는 돼야 비추던 햇살을 말이다. 나는 질흙같이 어두운 아침에 알람이 없이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은 어두워도 귀신같이 아침을 알아차리고 신나게 놀았다. 아마도 엄마가 늦잠 자길 자라지 않았을까 싶다. 동면을 취하면 적격이었던 곳에서도 아이들은 어떻게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어린이는 에너지가 차고 넘친다.

ⓒpixabay

겨울방학의 수업이 오전으로 잡혔다. 일찍 도착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수업이 시작된 건지 어떤 건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책을 펼쳐든다. 바로 전까지 만화책에 빠져있던 아이들의 관심을 그림책으로 옮겨와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임무다. 미끼로 던진 이야기에 한 두 명씩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너무 궁금하지 않니? 얘들아 여기 좀 바라봐죠.' 마음속 주문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며 다음 장을 넘긴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눈동자는 별처럼 반짝거린다. 내가 그림책을 쫌 잘 읽어주나 보다며 자화자찬을 해본다.


그림책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는 공감과 상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좀 어려운 감정이지만 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보르는 고양이를 잃어버렸다. 어제까지 함께 놀던 고양이를 찾던 중 만난 카우보이 아저씨는 열쇠와 말을 잃어버렸다며 그깟 일로 슬퍼하냐고 보르에게 핀잔을 준다. 까마귀는 자기 발에 박힌 자갈이 아프단다. 세상에 얼마나 슬픈 일이 많은지 홍수, 가뭄,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도 있다. 보르는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고양이를 잃어버려서 슬픈 보르는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도 못한다. 길고양이와 정이 든 보르는 어른의 보호 없이 혼자 다닌다. 나는 부모의 마음으로 책을 읽어서 그렇다. 돌봄 교실에 오는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다. 어제도 그제도 같이 놀았던 고양이가 사라졌으니 얼마나 안타까울까.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만 같은 표정의 보르. 그렇게 길에서 마주한 어른들은 위로는커녕 자기들의 처지를 한탄하느라 바쁘다. 자기 이야기만 한다. 그들의 것도 슬픔이고 보르의 것도 슬픔이다. 모두가 슬프다. 자기 얘기만 하는 어른들을 만나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보르는 또래를 만나서도 슬픈 마음을 꺼내지 않는다. 

그때 개가 다가온다. 

"무슨 일이야?", "그랬구나." 

먼저 물어봐주고 공감해 주는 말을 들은 보르는 위로를 받는다. 위로와 공감은 꼭 사람에게서만 받는 것은 아니다. 

ⓒpixabay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보르처럼 슬픈 적이 있나요?"

부모님께서 발라주셨는지 로션을 발라 반질반질 윤이 나는 1학년 아이가 손을 들었다.

"운동장에서 놀다가 종이 울렸어요. 교실로 들어가는데 어떤 애랑 머리를 부딪혔어요. 그래서 머리가 아팠어요. 그런데 내 머리가 돌이어서 슬펐어요."

머리가 돌이라서 슬프다고? 

"제 머리가 돌이라서 그 사람이 더 아팠을 거라고요. 저는 돌머리거든요. 공부를 못하거든요."

누군가에게서 공부를 못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난 지 8년밖에 안 된 아이가 공부를 못해서 돌머리라고 생각하다니. 1학년인데 얼마나 어려운 공부를 하기에 그럴까. 심지어 초등학교는 시험도 없다. 사정은 이러했다. 학원에서 매일 테스트를 보는데 많이 틀려서 집에 늦게 간단다. 남아서 클리닉을 한다고 했다.

"100점 맞고 싶어요."

지난 시간에 성공에 대한 그림책을 읽을 때 시험에서 100점 맞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는 그 학생이다.

클리닉의 사전적인 뜻을 찾아보았다.

"특정한 병이나 장애 따위에 대해 포괄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곳."

언제부터인가 학원에서는 클리닉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있어야 할 것이 학원 안으로 들어왔다.

한국 사회에서 어린아이를 교육시키는 방법이다. 아이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천천히 배우고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지 않은가. 부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어린이들이 병원에 있는 진짜 클리닉으로 가는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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