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타치 Jun 12. 2024

고등 학부모 상담일지

행복은 성적순?

위로받고 싶어서 신청했다. 학종 때 뵀던 담임 선생님은 긍정에너지와 사랑이 넘쳐흘렀다. 그런 선생님이라면 아이에 대해 내가 모르는 좋은 점을 얘기해 주실 거 같았다. 대한민국 고등생활에서 성적을 빼고 나눌 더 중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 싶지만 성적이 다가 아니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잖아요.'라는 영화도 있지 않은가.

pixabay

상담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텅 빈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계단 의자에 앉았다.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에서 말도 안 되는 점수를 받아 들고는 아찔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 공부 좀 했던 터라 충격이 컸다. 지금 생각해 보니 태하보다 안 좋은 성적이었다. 나보다 잘하는 아이를 걱정하는 나란 사람. 뭔가 논리가 안 맞다.


가방 속에 알람이 울리며 정신을 차린다. 맞춰놓길 잘했다. 엉덩이에 별로 묻지도 않은 흙을 두 손으로 탁탁 털어내니 긴장도 함께 날아간 듯싶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담임선생님을 마주 할 수 있겠다.


예상한 데로 선생님은 환한 미소로 맞아주셨다. 목소리가 하이톤인 것도 키와 체구가 비슷한 것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고등학교는 고등학교구나. 중간고사 성적표를 훅 꺼내 놓으며 한 과목 한 과목 등급을 체크해 주신다. 이 거, 이거 한 등급씩만 올리면 참 좋을 거라며 나보다 더 아쉬워한다. 처음 시험이고 아직 많이 남았다고. 성적도 중요하지만 학교 생활을 건강하게 하고 있다며 "우리 태하, 제가 너무 좋아하잖아요."라고 말한다. 반에 도움반 친구가 있는데 항상 태하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눈단다. 얼마 전에 있었던 운동회 때는 시종일관 승부욕에 이글거렸는데 함께 팀을 하며 꼴등을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승점에 도달한 도움반 친구를 향해 크게 박수를 쳐줬다는 이야기를 전하 실 땐 선생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오는 걸 겨우 참았다.

pixabay

마침 교무실 옆이 방송실이었다. 쫓아 들어가 마이크 잡고 "제가 멋진 태하 엄마랍니다." 소리칠 뻔. 다행이 문이 잠겨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침실을 따로 쓰면 편리한 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