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처럼 찾아와 사라진 나의 아이에게(13)
지옥 같은 3일이었다.
유사산 휴가를 내야 할 수도 있었으므로
팀장님께만 사실을 알렸다.
말없이 손만 잡아주시던 팀장님이
정말 너무 감사했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고
알려지고 싶지도 않았다.
자리를 비우는 동안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3일 동안 최선을 다해 바쁘게 일했다.
예정되어 있던 출장 업무도 처리하고
업무메일은 전부 예약발송을 걸어뒀다.
아주 약간의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아기가 다소 느리게 크는 게 아닐까 하는.
며칠째 있는 경미한 생리통이 아직 아기가 버티고 있는 증거라 여겼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 생각만 하면 정말로
그렇게 될까 봐
일부러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3일 뒤.
8주가 되는 날이 다가왔고,
나는 다시금 진료실에 앉았다.
이미 예견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예견한 일이 일어나질 않길
간절히 바랐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여전히 텅 빈 아기집.
초음파를 보고 있는 의사 선생님도,
나도 그저 무력했다.
다니고 있던 병원은 수술장이 없어
근처 분만병원으로 전원 해야 했다.
진료의뢰서를 작성하는
키보드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는 그저 초점 없이
멍하니 선생님 앞에 앉아있었다.
선생님이 뭐라고 설명을 하셨는데 현실감이 없었다.
순간,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했다.
이것이 나의 현실인 것을.
의사 선생님도,
진료실 밖에서 다음 순서를 알려주는
간호사 선생님도
원무과 직원도,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내 앞에서 그저 조용히 업무를 처리해 줄 뿐이었다.
그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걸
알고 있기에.
곧 긴 연휴가 시작되기에
오후에 바로 분만병원으로 진료를 보러 갔다.
다시금 마주하는 초음파.
아기는 6주에서 7주 사이 그 어딘가에서 성장을 멈춘 것 같다고 하셨다.
가장 빠른 수술 날짜는 월요일.
수술 자체는 간단하고,
나의 경우는 주차가 오래되지 않아서 출혈도 크지 않을 거라고 했다.
다만 통증이 있어 수면내시경처럼 진정제를 투여한 상태에서 진행될 거라고 했고
회복실에서 상태 보고 바로 귀가하면 된다고 했다.
병원에서 나오자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근 몇 개월을 줄여오던 커피였다.
샷 1개로 줄이다가 디카페인으로 바꾸다가
완전히 끊은 지 몇 개월.
그냥,
오늘만은 원하는 거 먹는 사치 부려도 되지 않을까.
아이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연유라테,
........
배달 어플에 그동안 참고 안 마셨던 커피를 잔뜩 담아 주문했다.
슬픔은 잠시 미뤄야지.
더 큰 슬픔이 찾아올 예정이므로
내가 너무 무너지지 않도록,
휩쓸려가지 않도록,
둑을 쌓을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