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즐거움

들을수록 우리는 더 커다란 사람이 되어

by 고은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좋아서 한 때는 그렇게 특화된 내 능력이 싫었던 적이 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거워 보였고, 그런 사람들은 무리에서 자연스럽게 돋보였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만남을 주도한다고 생각했다. 듣는 동안 나는 잠시 사라졌다. 내 얘기는 별 게 아닌 것 같아서,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서 나서지 않았다. 내 생각, 내 감정은 꾸물거리다가 세상으로 나오지 못했다.


어느 날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잘 듣고 있는 내 모습이 3인칭 시점으로 들어왔다. 화자에게 집중되었던 신경이 공기 밖으로 빠져나오는 듯한 신기한 경험. 싱글벙글 웃고 질문하고 감탄하고 있는 내 모습은 대화에 아주 잘 참여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태도였다. 왜 나는 잘 들을 수 있었을까. 왜 잘 몰입할 수 있었을까.


대화 속에서는 말하는 사람만이 주인공이 아니다. 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반응에서 생명력을 얻고 이어지는 호응에서 빛을 낸다. 모든 참여자가 진심일 때 비로소 하나의 사건으로 완성된다. 소리가 나는 곳은 눈길을 끌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 곳에서만 그 소리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화자의 유일한 이야기는 듣는 나에게 교훈이, 재미가, 자극이, 감동이 되어 내 세계만 있던 삶을 구석구석 채웠다.


리액션이 좋다, 분위기를 편하게 한다, 어떻게 그리 남의 얘기를 잘 듣느냐는 말에 작은 존재처럼 느꼈던 때. 내 얘기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보이진 않지만 꼭 필요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인을 존중하고 나의 삶을 확장하는 일. 나는 이 능력을 자랑스럽게 더 열심히 키워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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