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나만 알고 있는 내가 있다.

그렇지만 혼자가 아니야!

by 고은지

치열하게 일했던 여름의 어느 날, 이미 저녁 시간을 한참 넘긴 까만 밤이 되었다. 꼬르륵거리는 뱃속의 느낌이 불쾌하게 자극했다. 모니터를 끄고 노트북을 탁 덮었다. 계속 돌아가는 머릿속 - 오늘 이거 이거 했으니까 내일 저거 저거 해야 되고... 아 그거는 어떻게 됐으려나 내일 출근하는 길에 확인해 봐야겠다... 멈추지 않는 사고 회로를 끊어보려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 한 캔을 꺼냈다. 탁.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사무실에서 캔 따는 소리가 튀었다. 목구멍에 시원하게 넘어가는 느낌은 없었다. 뺨을 타고 굵은 눈물만이 주룩주룩 흘렀다. 큰 소리를 내며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짊어진 많은 일들을 잘 해내고 있으면서도 그건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도 분노도 아닌 요상한 감정이었다. 나는 그 희한한 눈물의 의미를,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꼭 알고 싶어졌다.


신호를 잘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그때의 내 모습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두런두런 얘기해보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상대를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주관이 개입되기 시작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고 있는 줄 알지만 내 위주로 입장이 돌아간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캐내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살았던 하루하루를 들려주었다. 그 과정에서 제일 많이 나왔던 말은 ‘아무도 모르는데 나 혼자’. 아무래도 나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걸,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랐나. 어쩌면 역시 잘한다는 한 마디가 필요했는데 아무렴 상관없는 척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의식했던 인정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것이었다.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 얻더라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대신 더 확실하고 강력한 비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


누구나 나만 알고 있는 내가 있다. 나만 아는 나를 들여다봐주는 것. 사랑스럽고 비밀스럽게 속삭여주는 것. 밖에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이 오히려 신비롭고 궁금해진다. 이걸 알고 있다면 인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랑 제일 친한 내가 알고 있으니까.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전부 숨길 수가 없다. 나의 최선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가장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는 존재는 결국 나인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같이 일하던 동료들로부터 뜻밖의 메시지를 받았다. ‘덕분에 배우고 있다’, ‘가지고 싶은 역량을 이미 가지고 있어 부럽다’. 나만 알고 있는 나는 사실 누군가의 눈에 또 다른 나로 이미 기억되는 중이었다. 그렇게 외로워하지 않아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경청의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