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50분, 종합병원은 만원 버스처럼 붐볐다. 시골 도시의 유일한 노인전문병원이라 이른 아침부터 어르신들이 몰려들었다. 밖은 한산했지만 안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의자마다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고, 복도는 오가는 이들과 줄 선 이들로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접수를 확인하자 돌아온 말은 "기다리세요"뿐이었다. 예약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새벽부터 서두른 탓에 남편 얼굴에는 벌써 피곤이 묻어났다. 간신히 찾은 두 자리에 시부모님을 앉히고, 남편과 나는 서서 기다려야 했다. 둘러보니 혈압을 재고 받은 기록지 순서대로 부르는 듯했다.
그때 간호사가 복도를 향해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자 더 큰 목소리가 울렸다. 침묵이 흐르는 다른 병원 복도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굽은 허리에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이 “여기요” 하며 천천히 걸어왔다. 간호사는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고 곧장 다가가 부축했다. 짧은 그 장면만으로도, 이 병원에 노인이 많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가 가장 젊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장 ‘자식’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예순을 앞둔 나이. 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자식이지만, 자식 눈에는 이미 나이 든 부모다. 양쪽 세대 사이에 놓인 세대, 이른바 ‘낀 세대’다. 일터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유롭지 않다. 또 다른 의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퇴직 후의 삶은 의외로 분주하다. 양가 부모님 모두 연세가 많아 병원도 혼자 가기 어렵다. 에어컨이 고장 나거나 TV 화면이 멈추면 어김없이 전화가 온다. 은행 일, 집안 대소사, 약국… 이유는 달라도 결국 뜻은 같다. "너희들이 와야 해결된다."
가끔은 짜증이 나기도 한다. 왜 꼭 우리가 해야 하는 걸까 싶다가도, 부모님이 우리를 얼마나 의지하고 계신지 보면 미안해진다.
또 어떤 날은 시장 심부름이나 미용실 동행, 가스 검침 확인, 서류 도장 같은 사소한 일도 있다. 그러나 그 사소한 일조차 결국 발걸음을 옮겨야만 해결된다. 돌봄이란 거창한 수발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잔일의 연속이고 때로는 곁에서 직접 간병해야 하는 일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친구들도 병원, 요양원, 주말 방문 일정을 안고 산다. 함께 살든 멀리서 드나들든 결국 같은 현실을 마주한다. 부모를 돌보고 자식을 챙기는 무게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감당한다. 모이면 대화의 절반은 부모님 이야기다. 한숨 섞인 하소연으로 시작해도 결국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 같은 길을 걷고 있구나’ 하며 위로받는다. 이런 얘기를 함께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된다.
"부모님이 이렇게 살아 계신 게 어디냐.” 명절이면 친척들이 으레 하는 말이다. 나 역시 살아 계실 때 찾아뵙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일정이 늘 빠듯하다. 이번에 큰아이는 결혼 후 첫 명절이라 조부모댁에 인사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면 내 어머니와 시부모님도 찾아뵈어야 하고, 우리 집에도 들른다는 뜻이다. 하루 안에 모든 집을 도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이 조부모를 만나러 오겠다고 연락할 때면 그 마음이 기특하다. 그리고 부모님 또한 "고맙다"라는 말을 전할 때의 그 미소를 보면,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어느덧 나는 부모에게는 자식이고, 자식에게는 버팀목이 되었다. 어디에도 온전히 기대지 못한 채 오늘도 균형을 잡고 선다. 언젠가 우리도 자식에게 돌봄을 받는 날이 오겠지. 그러나 그런 부담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낀 세대의 삶이자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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