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치킨을 시켰다. 큰 사이즈 콜라까지 담긴 화면을 확인하고 주문 버튼을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대학원 면접을 마치고 온 아들은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이다. 오전부터 긴장한 채 물만 마셨을 그 얼굴이 눈에 선했다. '대학원 면접이 뭐 그리 대단하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그냥 안쓰러운 엄마 마음이고. 아들에겐 인생의 갈림길 같은 큰 일이었을 거다.
저녁 무렵에 도착한 아들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집을 나서며 입은 정장 재킷은 어디 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너무 답답해서 갈아입었다며 가방을 들어 올렸다. 낯설지 않은 행동이다.
그런데 배달된 치킨을 받고 보니 콜라가 없었다.
"음... 분명 주문했는데 이상하네요."
아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차분했고, 나는 영수증부터 살폈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지만 배달 기사는 이미 떠난 뒤였다. 매장에 전화를 걸자 직원은 모른다는 투였다.
"저희는 어느 기사님이 배달했는지 모릅니다."
아들은 몇 마디를 더 주고받더니, "알겠습니다"를 되풀이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괜찮아요, 엄마."라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런 대답이 어딨어. 괜찮다고? 콜라값을 냈는데!"
"그럴 수도 있죠. 콜라 때문에 기분 상하기 싫어요."
그 한마디가 더 어이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들에게 '수고했다'며 웃던 나는 이미 흥분했고, 아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냥 먹어요. 콜라 때문에 치킨 식겠어요."
아들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침착했다. 난 속이 답답했다. 콜라값을 냈으면 콜라를 받아야 한다. 당연한 일 아닌가. 사람들은 따지지도 않고 참기만 하면 함부로 대하고 만만하게 볼 뿐이다. 잘했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 아들에게 잘잘못을 가르치고 아이 다루듯 대신 전화를 걸 수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아들의 선택이었다.
우리는 떨떠름한 기분을 뒤로하고 치킨 상자를 열었다. 치킨은 죄가 없었다. 아들은 배가 고픈지 허겁지겁 치킨을 입에 넣었다. 물밖에 없어 냉장고를 열었지만, 그날따라 먹다 남은 콜라도, 김 빠진 맥주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반쯤 남은 포도주 병이 있었다.
잔을 꺼내 한 잔씩 따랐다. 말하지 않아도 어색한 공기를 몰아내고 싶은 건 나도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잔이 부딪히자 분위기는 금세 달라졌다. 허기진 배를 조금 채운 아들은 면접장에서 느낀 긴장과 아쉬움,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했다. 포기한 콜라 대신 포도주 한 잔이 그날 저녁을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조금뒤 동생의 면접이 궁금했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딸이다. 얘기 끝에 무엇을 먹었냐는 물음에 나는 콜라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 이익 챙기기 바쁜 세상에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말도 더했다. 한숨이 절로 나온 나와 달리 전화기 저쪽은 전혀 반대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랑 똑같네. 찬이도 엄마 닮은 거야. 나도 그렇고."
"너도 서울 생활, 꽤나 힘들었잖니."
"응. 당연이요."
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혼자 감당했을 직장 생활과 서울에서의 외로운 날들이 전해졌다. 안타깝고 기특한 마음에 뭐라 말하려는데, 딸이 먼저 덧붙였다.
"손해 보는 게 꼭 마이너스는 아닌 것 같아요. 손해 안 보려는 사람들, 오히려 더 피곤해 보여."
그제야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포기가 아니라 선택.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자기표현이었다. 예전의 나도, 지금의 아들도, 서울에서 홀로 버텼을 딸도 결국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해를 감수하는 방식으로. 나는 그걸 '참는 것'이라 여겼고, 아이들은 그것을 '선택'이라 불렀다. 나보다 어른이었다.
식탁을 정리하던 아들은 어느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오늘따라 치킨이 맛있네. 배가 고파서겠죠." 기름 냄새 가득한 종이박스를 들여다보니 깨끗이 비어 있었다. 아들은 만족한 듯 배를 두드리고 기름 묻은 입술을 티슈로 쓱 닦았다.
그래, 배고픈 아들이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