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싶은 마음과 가야 한다는 마음이 아침마다 줄다리기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신발을 신고 있다. 퇴직 후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하루를 챙겨야 하는 딸이자 며느리다. 내가 맡은 몫이니 원망 말자고 되뇌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새벽에 잠이 깬다.
몸은 한결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무거워졌다. 거의 매일 딸이 전화를 걸어 묻는다. "오늘은 어떻게 지냈어요?"
뻔한 안부 속에 묘한 감시와 염려가 함께 담겨 있다.
평범한 대화를 이어가다 자연스럽게 말했다.
"응, 할머니 집에 가서 청소하고, 국 끓이고, 내일 입을 옷도 챙겨드렸어."
"또요?"
순간 서운한 마음에 멈칫했지만, 곧 알아차렸다. 딸은 나를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한 거였다. 어릴 적 자신을 끔찍이 아껴준 외할머니, 그분을 돌보는 내 모습이 딸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을 것이다.
동생들도 각자의 삶을 꾸리느라 바쁘다. 퇴직은 했지만 나 역시 매일이 분주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바쁨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딸은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속상해한다. “왜 엄마만 해요?”라는 말에는, 퇴직 후에도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쓰는 내 삶이 안쓰럽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나도 그 마음을 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사랑이든 의무이든, 해야만 하는 일이다.
며칠 전엔 보령에 있는 시가에 갔다. 내가 올 줄 몰랐다며 시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오랜만에 짜장면도 먹고 싶었는데, 그냥 두부찌개 끓였어." 소박한 밥상이라 미안해하셨지만, 방 안 가득한 구수한 냄새만으로도 허기가 돌았다. 밥 한 그릇을 비우는 걸 보고 시어머니가 "웬일이냐" 하시며 웃으셨다. 그 온기 어린 웃음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며느리의 의무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두 분의 따뜻한 모습을 보고 나면 가벼워지고 오히려 평안이 내 안으로 스며든다.
시가에서 돌아와 피곤했지만 친정 엄마 집에 들렀다. 저녁 무렵, 퇴근길이라며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은 뭐 하셨어요?"
"응, 오늘은 시골집에 가서 책도 읽고, 고양이랑 놀다 왔어."
굳이 사실대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시골집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는 분명 "또요?"라고 물었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안다. 이제는 부모가 자신을 돌보며 살길 바란다. 요가, 전시회, 여행 같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삶을. 나 역시 그런 삶을 꿈꾸었다. 베란다 식물을 가꾸고, 동네 책방을 구경하며, 시골집 고양이들과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는 생활.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꿈을 잠시 미뤄둔 채 지낸다.
세상에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이유를 따지기보다, 그냥 받아들이는 쪽이 마음이 편하다.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하자고 다짐한다. 그렇게 오늘도 두 집을 오가며, 딸의 “또요?”를 피하고, 내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인다.
사진 출처 pexels-myfoo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