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 다른 시선

by 은진


"가장 마음에 든 구절을 나눠볼까요?"

독서모임에서 방장이 던지는 질문마다 나는 늘 긴장한다. 질문을 받을 때면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손은 이미 포스트잇이 붙은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방장은 매번 공들여 질문지를 준비해 오고, 깊이 있는 말로 우리를 이끈다. 덕분에 단순히 책을 읽고 끝내는 것을 넘어 사유를 정돈하고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 된다.


방장은 종종 나에게 먼저 질문을 던진다. 집중해서 잘 듣는 사람이라서일까, 꼼꼼히 읽었다고 짐작해서일까. 아마도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먼저 나서는 건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아는 척을 해서가 아니라 책 이야기를 할 때면 말이 술술 나온다.


책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를 먼저 꺼내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책을 매개로 모였지만, 사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읽는 중이다. 그들의 말을 듣다 보면 같은 책을 읽고도 나와는 전혀 다른 장면에 밑줄을 긋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내가 어떤 문장에 오래 머무는 사람인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상하게 나는 늘 이야기의 가장 힘든 장면에 굵고 진한 선을 긋는다. 주인공이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이미 내 마음이 먼저 흔들린다. 세상의 부조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나, 작가가 차마 덮지 못한 상처가 남은 문장 앞에서 한동안 멈춘다. 그리고 결국, 상처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익숙해서일까, 아니면 직감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결국 또 그쪽이다.


그래서 다른 회원들이 들려주는 구절이 내게는 낯설다.

"이 부분이 재밌더라고요. 위기 속에서도 농담을 던지잖아요."

"이 대화 장면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어요."

묵직한 이야기 속에서도 작은 빛을 놓치지 않는 그들의 눈이 새삼 놀랍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맞아, 그런 장면이 있었지' 하고 속으로 뒤늦게 되짚는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나는 왜 그 순간을 놓쳤을까. 작가가 남겨둔 희미하지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희망의 결을 나는 늘 지나쳐버리는 것 같다. 마치 같은 그림을 다른 각도에서 본 것처럼. 우리는 같은 문장 앞에서 전혀 다른 감정을 건져 올린다.


이번 달 독서모임 책은 프랭크 브루니의 『상실의 기쁨』이다. 갑작스러운 시력 상실, 혼자서는 물 한 잔도 따르기 어려웠던 날들, 그런 불편한 일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담긴 책이다. 시각을 잃은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고 견디는지 따라가다 보니, 완전히 이겨내지 못해도 그 자체로 충분해 보였다.

상처도, 실연도, 죽음도 괜찮은 척하지 않고 불안에 떠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 때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세상에, 나만 불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었구나. 그 작은 발견은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머문 문장이 있다.


"슬픔과 싸워 한 번 졌다고 해서 완전히 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하면서도 끝까지 버텨보려는 사람의 숨이 느껴졌다. 매일 보던 하늘도, 가족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데도 약해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절절했다. 시력이 멀쩡한 나지만 그 체온이 전해졌다.


책을 읽는 일은 곧 나를 읽는 일이다. 눈이 멈춘 문장마다 내 마음이 비친다. 그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 더 나를 이해하게 된다. 오늘도 포스트잇이 붙은 문장 위에서 한동안 멈춰 섰다.


프랭크 브루니의 『상실의 기쁨』, 독서 모임을 위해 자주 가는 우리 동네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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