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베란다의 식물은 저마다 작은 신호를 보낸다. 물이 부족하면 잎 끝이 먼저 힘이 빠지고, 병충해가 오면 잎의 색이 희미해진다.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 미세한 움직임이 하나의 주파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것들은 자기 방식으로 말을 건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음이 흔들리면 표정이 달라지고, 말투 역시 부드러워졌다 거칠어졌다 한다. 그런 날은 유독 음악에 예민해진다. 청소기를 끄고, 라디오에서 들리는 낯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날 라디오에서 사샤 슬론의 'Older'가 흘러나왔다. 나직하면서도 묘하게 끌어당기는 목소리, 인디팝 특유의 담백한 멜로디. 'door', 'kitchen', 'my mother' 같은 단어들이 스쳤지만, 언어보다 감정이 먼저 다가왔다.
며칠 동안 그 멜로디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끌리듯 유튜브에서 라이브 영상을 찾아봤다. 마이크 앞에 선 그녀 뒤로 어린 시절 사진과 한글 자막이 보였다. 해맑은 표정이었지만, 그 아이에게서 어딘지 모르게 나에게도 낯익은 외로움이 스며 있었다.
그리고 한 문장에서 나는 멈췄다. 어른들의 싸움은 끝이 없었고, 나는 절대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는 고백.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오래된 상처의 기록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숨겨 두었던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다른 집의 딸이 되고 싶다는 금지된 상상부터 그분들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단호한 생각까지.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해 귀를 막는 게 다였지만 그런 다짐만큼은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아이는 자라고, 나는 어른이 되고, 어느새 부모가 되었다. 다르게 살겠다는 그 다짐이 잘 지켜졌을까?
그 답은 얼마 되지 않는 날에 찾아왔다. 아이의 얼굴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어느 평범한 저녁이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 아이들과 어지러운 집이 나를 맞았다. 딸이 달려와 학교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주었지만, 나는 끝까지 들어주지 못했다.
"엄마, 오늘 선생님이 내 그림 칭찬했어. 그리고…"
"응… 그래. 근데 엄마 좀 피곤해."
딸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고, 나는 힘들다는 핑계로 애써 모른 척했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도 나에게 그랬다는 걸. 다정하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다는 걸.
시간은 흘렀고, 아버지는 오래전에 떠나셨고, 엄마는 이제 기억의 조각들을 놓치기 시작했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그분들은 누군가의 '히어로'가 아니었다. 완벽한 부모도 아니었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내느라 서툴렀고, 때문에 조급했고, 그래서 다정할 틈이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긴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분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The older I get, the more that I see, my parents aren't heroes, they're just like me.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부모님은 '히어로'가 아니라, 나처럼 흔들리고 고민하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결국 이 노래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늦은 고백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고백을 천천히 이어 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