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예순 번째 생일 여행, 딸이 도쿄 다음으로 고른 곳은 하코네였다. 깊은 산속 온천지답게 전통 료칸들이 빼곡한 곳이었다.
우리가 묵을 료칸은 조금 스산했다. 일본식 여관이라 호화롭진 않아도 깔끔할 거라 기대했지만, 실내는 어둑했고 낡은 가구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코끝을 찌르는 쾌쾌한 냄새가 신경 쓰였다. 곰팡이 냄새 같기도, 젖은 흙에서 피어오르는 생경한 기운 같기도 했다. 딸이 인터넷 정보만 믿고 좋은 곳이라고 착각한 건 아닐까 생각하며,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랐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 료칸이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그 냄새가 오래된 나무와 숲의 향이었다는 것을.
예약해 둔 프라이빗 노천탕도 전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이름이 다른 노천탕을 번갈아 가며 머무는 동안 온천욕에 푹 빠졌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오래된 나무 냄새와 함께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어슴푸레 들려왔다. 새소리까지 더해지니 모든 잡념이 사라졌다. 시끄러운 것들이 온천 속에서 다 녹아내리고, 오직 고요만이 남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다시 노천탕을 찾았다. 전날 밤과는 풍경이 달랐다. 깨끗한 탕 속이 그대로 드러나고, 가을로 접어든 주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모습을 보며 탕에 앉으려는 순간, 물결에 출렁이는 어떤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가 물 밑에 가라앉아 있었다. 발끝으로 살짝 물결을 일으키니 그 가지가 떠오르듯 흔들렸다.
아니, 잠깐.
나뭇가지치고는 움직임이 이상했다. 물결에 따라 흔들린 게 아니라 마치 관절이 있는 것처럼 굴곡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표면에 마디 같은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마디마다 뭔가 돋아 있었다.
헉.
손바닥만 한 크기. 갈색빛 몸통. 양옆으로 줄지어 달린 가느다란 다리들. 스무 개는 훌쩍 넘어 보였다. 이미 죽어서 뻣뻣하게 굳어 있었지만,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지네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어젯밤 나는 바로 이 탕에서 기분 좋게 밤풍경을 즐겼다. 깊게 호흡하며 자연과 하나 된 듯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엄마, 왜 그래?"
딸이 묻자, 나는 입술만 달싹이며 탕 속을 가리켰다. 물속을 들여다본 딸은 화들짝 놀라 탕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도 얼른 뒤따라가려다 발을 멈췄다.
물결이 멈춘 탕 속에서 지네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그 지네보다, 지네를 감싸고 있던 투명하고 뜨거운 물을 바라봤다. 어젯밤, 내 몸을 온전히 감싸 안아주었던 그 맑은 물. 이 존재가 바로 그 물속에 있었다. 오래도록 잠겨 있으면서도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니.
그런데 이상했다. 황당하고 소름 끼쳤지만, 어제의 그 시간이 망가지지는 않았다. 나무 냄새에 섞인 평온함, 새소리와 함께 녹아내리던 피로. 그것들은 여전히 내 안에 온전히 남아 있었다. 투명해서 모든 걸 보여줬지만, 그렇다고 어둠 속에서 느낀 평온이 흐려지지는 않았다. 지네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 순간들을 거짓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나는 천천히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산속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밖에서 기다리던 딸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어쩐지 피식 웃음이 났다.
"휴… 그래도 어제 온천욕은 잘했다, 그치?"
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제야 천장을 올려다봤다. 지붕과 벽까지 오래된 나무로 둘러싸인 노천탕. 깊은 산속이었으니, 지네가 드나드는 것도 어쩌면 자연의 이치였을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
지네는 여전히 그 자리에 가라앉았고, 산속은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