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울리기 전에

by 은진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 뒤척이다 귀를 기울이니 벌써 자정을 넘겼다. 거실 벽을 차지한 오래된 괘종시계가 깊고 묵직한 종소리로 열두 번을 울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멈춰 있던 시계를 남편이 되살렸다. 멀리까지 가서 수리하고, 흔들릴까 부서질까 고심하며 품에 안고 돌아온 것이다.


초침이 밤을 쪼개는 작은 도끼처럼 힘차다. 둡딱, 둡딱— 한밤을 가르는 소리. 눈을 감아도 등을 돌려도 어둠을 쳐내며 또렷하게 울린다. 오늘만큼은 푹 자고 싶다. 낮 동안 쌓인 피로가 온몸에 가득한데, 이번에도 쉽지 않다. 뒤척이던 몸을 반듯하게 펴고, 두 손을 가슴 위에 고이 포갠다. 제발, 잠들게 해 주세요.


쏴아— 물 내려가는 소리가 천장과 벽 너머에서 흐른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겠다. 그 이웃도 아직 잠을 이루지 못한 모양이다. 숨을 고르고 베개를 머리맡에 당겨보지만, 이번에는 문 닫는 소리와 가느다란 물줄기가 멀리서 내려온다.


혹시 이것도 병인가. 버티고 서 있던 잠이 하루아침에 다 달아난 것인가. 식탁 위에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제가 놓여 있다. 반의 반 알이라도 먹어볼까 고민하다, "습관이 되면 조심해야 한다"던 약사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 오늘은 참아보기로 한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심정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지금도 그렇다. 해야 할 일들이 목록처럼 떠오르고, 오늘 하지 못한 것들은 허공에 적어두듯 하나하나 새긴다. 내일의 몫은 계속 쌓여간다. 이런 생각들이 잠을 방해하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저 잠을 자고 싶다고 고백할 뿐이다. 그러나 그 소박한 바람조차 외면하듯, 잠은 슬그머니 돌아서 버린다.


옆에서 자던 남편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누구보다 먼저 곤히 잠드는 사람인데, 요즘 뭔가 힘들어 보인다. 듬직했던 어깨는 가라앉아 더 작아진 듯하다. 그는 얼마 전 꿈속에서 흐느끼며 울부짖었다. 악몽은 가라앉았지만, 그 서늘한 기운이 밤의 틈으로 스며들어 내 잠까지 흔드는 것만 같다.


아, 생각이 어느새 여기까지 흘러왔다.


시계추가 흔들리며 두 시를 알린다. 한 번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 있다. 털어내고 싶은 것들은 떨어지지 않고, 말하고 싶은 것들은 목구멍에 걸린 채, 오지 않는 잠만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낮에 했던 일들이 밤이 되면 더 무겁게 다가온다. 괜찮다고 다짐했던 마음도 어둠 속에서는 괜찮지 않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말해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기에 침묵을 택했다. 오늘 같은 밤엔 그 선택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계는 또 칠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더 이상 버티지 않기로 한다. 뒤엉킨 생각의 꼬리를 끊고,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내일 밤도 아마, 이런 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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