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마다 어반스케치를 배우러 간다. 요즘은 인물 스케치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표정이 뚜렷한 얼굴이나 움직임이 분명한 예시 자료가 시선을 끌지만, 나는 자꾸 다른 장면을 고른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 인도를 천천히 걷는 사람의 뒷모습. 등을 지고 바닷가에 앉은 이들.
꼭 앞모습이 어려워서도, 옆모습을 피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런데 스케치북을 넘기다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거의 비슷했다.
상담 공부를 하며 심리학 책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특히 이상심리학이 흥미로웠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면서도 창가로 가는 사람, 혼자 있고 싶다 말하면서 사람들 틈에 서 있는 사람. 사람 마음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참 많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왜 저러지?'하고 잠시 멈추게 만드는 질문들이다.
그래서 요즘 뒷모습만 그리는 내가 이상해 보였다. 혹시 이건 위축의 신호가 아닐까. 관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대신, 피하는 방식이 아닐까.
버거운 상대를 만나면 위축되고, 관계가 꼬이면 피하는 쪽이 편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소심한 사람이라고 불러온 시간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설명만으로는, 요즘의 나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떠올려 보니, 최근의 나는 늘 뒤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앞에 나서기 꺼리는데도 문학 동호회의 회장을 맡았다. 처음 동호회를 제안했고, 얼마 전에 창간호 작업을 무사히 끝냈다. 출판사 의뢰부터 자잘한 일까지 어느새 내가 맡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 서면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리고 말은 어눌하다. 원래라면 한 발 뒤로 물러났을 텐데, 어쩐 일인지 주저하지 않았다. 성격에 맞아서라기보다는, 멈춰 있는 흐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다.
뒤돌아보니 나는 '소심함'과 '당당함' 사이에서 나를 재단해 왔다. 둘 중 하나여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동호회를 이끄는 나도 나고, 뒷모습만 그리는 나도 나다. 상황마다 다가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멈춰 있는 흐름 앞에서는 앞으로 나서고, 스케치북 앞에서는 한 발짝 비켜선다. 이게 모순이 아니라 리듬이라면 어떨까.
다시 그림 속에서 나는 거리를 둔다. 두 사람이 걷는 거리에는 가을빛이 가득하다. 그들이 젊은 연인인지, 노부부인지, 막 손을 잡은 사이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뒷모습을 보며 상상한다. 그들이 나를 바라보지 않아 좋다. 부르지도, 따라가지도 않는다. 한 발짝 뒤에서 두 사람의 움직임을 종이에 옮길 뿐이다.
뒷모습은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일로 거리에 나섰는지 알려줄 리 없다. 대신 방향이 있다. 어느 쪽으로 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이게 회피일까, 아니면 편안한 거리를 찾은 것일까.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브런치 내 프로필 사진도 뒷모습이다. 일부러 정한 것은 아니지만, 굳이 바꾸지 않은 채로 두고 있다. 어쩌면 뒷모습에서 내가 발견한 건 ‘방향’이었는지도 모른다. 피하는 게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다음 주 금요일,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을 그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