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꺼낸 틈 하나

by 은진

무난해야 덜 피곤했다.
그 시절의 나는 눈에 띄지 않는 색 뒤로 자주 숨었고, 그렇게 지내는 편이 나았다. 채도를 낮춘 회색과 검정, 거기에 남색을 조금 섞은 색들. 늘 그쪽을 골랐다.

좁은 옷장에는 출근할 때 입을 몇 벌이 전부였는데, 모양만 다를 뿐 분위기는 비슷했다. 어두운 옷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고, 멀리서 보면 수녀복에 가까울 만큼 고요했다. 빨강과 노랑은 애초에 고르지도 않았다.


이유는 늘 그럴싸했다.
화려한 옷차림은 학생들의 집중을 흐린다는 논리, 교사는 걸어 다니는 도덕 교과서여야 한다는 말들. 수긍이 갔고 반박하기도 애매했다. 나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인 참이었고, 적응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튀지 않는 무채색 어른이 되는 법부터 익히는 중이었다.


직장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들과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잘 맞았다. 오히려 불편한 건 어른들의 시선이었다. 복도를 지날 때마다 나를 훑고 지나가던 눈길. 발소리가 내가 있는 쪽으로 가까워지면, 나는 고개를 조금 더 숙였다.


처음엔 청바지가 걸림돌이었다. 반바지는 상상도 못 했고, 유행하는 찢어진 청바지도 아닌 멀쩡한 바지였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눈에는 단정하지 못한 차림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회의 시간마다 '복장이 단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때면, 꼭 나를 앉혀두고 하는 이야기 같았다.


종이 한쪽에 부지런히 적어 두었다.
‘복장은 단정하게. 튀는 색 금지. 청바지 안 됨.’
회의가 끝날 무렵, 내 업무노트는 옮겨 적은 문장보다 그 주변을 에워싼 정체 모를 낙서들로 더 빼곡해져 있었다.


선택지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첫 발령 기념으로 부모님이 사준 밤색 정장, 그 외에는 지극히 평범한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발랄한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는 마음속에서만 꺼내 입었다. 밝은 색들은 점점 안쪽으로 밀려나고, 옷장은 어느새 학교를 닮아갔다. 아침마다 그 앞에 서면 약속이라도 한 듯 밋밋한 색들이 나를 맞았다.


그런 내게도 마음을 건드리는 옷이 한 벌 생겼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냥 보자마자 손이 갔다.

치마 기장이 무릎 위로 반 뼘이나 올라가 부담스럽긴 해도 마음에 들었다. 활짝 핀 라일락을 그대로 닮은 투피스는 옷걸이에 걸어만 두어도 화사했다. 그 옷에 신발까지 맞춰 신고 나서던 날은 발걸음이 괜히 가벼웠다.


아이들이 제일 먼저 알아보고 다가왔다. 나를 한 바퀴 빙 둘러보더니 오늘 무슨 날이냐, 새로 산 거냐, 데이트라도 가느냐며 쉴 새 없이 묻기 시작했다. 메모해 두었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그때 또 한 번 알았다.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의 시선은 교과서보다 나를 향했다. 집중 좀 하라는 뜻으로 눈을 흘기면, 아이들은 웃음으로 답했다. 그 웃음은 좀처럼 교과서로 돌아가지 않았다. 덤으로 “선생님, 오늘 예뻐요.”라는 말도 슬쩍 얹혔다. 그 말을 굳이 막지는 않았다. 솔직히 싫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뭔가 조금 달라졌다. 처음엔 우연이었다면, 이번엔 달랐다. 눈에 띄는 걸 알면서도 골랐다. 햇빛을 그대로 입은 듯한, 울타리 옆 개나리를 닮은 진노랑 트렌치코트였다. 한적한 시골 학교 풍경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 더 눈에 띄었다. 그걸 입고 출근할 생각을 했다니, 무슨 배짱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처음엔 토요일에만 그 코트를 꺼냈다. 토요일도 등교하던 시절이라, 그날의 학교는 평일보다 조금 느슨했다. 노랑 코트를 입고 교문을 들어서면 ‘오늘은 조금 다른 날’이라고 나 혼자 선언하는 기분이 들었다. 실내에 들어가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면, 나는 다시 평소의 색으로 돌아왔다. 그 짧은 등굣길을 채우던 노란빛이 나를 버티게 하고 붙들어 주었다.


그건 아주 작은 틈이었다.

하지만 그 틈 하나로, 같은 복도와 교실, 좀처럼 달라지지 않던 날들과 길게 이어지던 회의를 견딜 수 있었다. 코트 하나로 세상이 달라질 리는 없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나는 여전히 채도를 낮춘 어른이어야 했다. 그래도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었던 내가, 지금 생각하면 조금 귀엽다.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숨을 쉬고 있었다.


볼로냐 그림책 전시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