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는 우리 반에서 제일 키가 작은 아이였다.
늘 콧물이 입술 가까이 흘러내릴 만큼 감기인지 비염인지를 달고 다녔다. 준비물이나 숙제를 제대로 갖춰 온 날이 드물었다. 그래도 그 일로 변명을 늘어놓는 법은 없었다. 한참 어린 여동생이 둘이나 있어서인지, 다른 아이들처럼 눈물부터 보이지도 않았다.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던 아이에게서 생긴 빈자리가 보였다.
나는 서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만 졸업했을 뿐 진짜 사회경험은 처음이라 모든 게 어설프고 서툴렀다. 그래도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잘 따랐다. 세 들어 살던 주인집 부부도, 주변 이웃들도 말수가 적었지만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대했다.
처음 마을에 도착했을 때 골목마다 풍기는 냄새가 낯설었다. 집집마다 멸치나 생선으로 담근 액젓 항아리가 있었고, 비릿한 발효 냄새가 골목에 배어 있었다. 항구 쪽에서는 뱃일을 하는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거칠고 짧은 말들, 마주치는 눈빛에는 경계가 묻어 있었다.
학교를 둘러싼 바닷가 마을은 크지 않았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옛 성터에 오르면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성곽을 끼고 우뚝 서 있는 학교는 마을의 중심이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내 시선은 운동장을 지나 우리 반으로 들어가곤 했다.
스물 초반, 겉으로는 어른 행세를 했지만 타지에서의 생활은 외로웠다. 아이들 앞에서는 쾌활한 척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근처 바닷가 갯벌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물이 빠지면 골짜기처럼 팬 자리와 둔덕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거뭇한 갯벌 위로 칠면초가 자랐다. 처음 올라오는 어린싹은 노랑과 연두 사이 어디쯤의 색을 머금고 있었다. 짠물 속에 뿌리를 내리고 조금씩 자랐다.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진우도 그랬다. 바닷바람을 피할 수 없는 해안 마을 끝에 살며, 아이는 매일 먼 길을 걸어 학교에 왔다. 검게 그을린 볼은 늘 발그레 얼어 있었고 코끝은 빨갰다. 그래도 결석하는 일은 없었다.
고향에서 어머니가 나를 보러 오셨다. 혼자 낯선 곳에서 지낸다며 주말을 이용해 오신 것이었다. 좁은 셋방에서 함께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나가시려던 참이었다. 문 앞에 커다란 자루가 있었다. 열어보니 홍합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옆집 아저씨가 두고 간 것이었다. 껍데기에는 갯벌 흙이 묻어 있었고 바닷물이 축축하게 배어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삶아 먹은 홍합은 바다를 그대로 입에 머금은 것 같았다. 어머니는 지금도 가끔 그날 먹었던 홍합 이야기를 하신다. 그렇게 맛있는 홍합은 처음이었다고. 나 역시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그해 가을, 태풍이 지나간 뒤 진우 아버지가 바다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소라고둥이나 따개비를 잡으러 다니던 바다였다. 장례를 치르고 학교에 나온 진우는 울지 않았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말도, 엄마가 매일 바닷가에 나가 앉아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동생이 있는 교실을 살피러 가는 뒷모습을 보며, 저 좁은 어깨 위에 무거운 바다가 얹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삼킨 바다를 매일 마주하면서도 진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학교에 나오기만 바랐다. 고맙게도 진우는 매일 아침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음 둘 곳 없이 흔들리던 나를 바라보던 아이의 텅 빈 눈동자 앞에서, 내 희망은 바닷바람에 흩어지는 모래알처럼 가벼워 보였다.
그 후로 파도 소리가 조금 덜 무섭게 들리기 시작했다. 골목의 쿰쿰한 냄새가 익숙해지고. 이웃들이 건네는 투박한 말투 속 마음도 알아듣게 되었다. 혼자였던 생활은 견딜 만해졌고, 그곳에서 조금 더 근무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 해를 더 바닷가 마을에서 보냈다.
진우를 다시 만난 건 한참 뒤였다. 다른 지역으로 옮긴 후, 우연히 그 마을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소문난 맛집이 있다는 말을 듣고 들어간 횟집에서, 그만큼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제법 어른이 된 진우는 굵은 턱선에 단단한 어깨를 갖고 있었다. 바닷가 인근의 집을 개조해 어머니와 함께 작은 횟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선생님 아니세요?”
쑥스럽게 웃으며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말수가 적고, 요란한 반가움 대신 잔잔한 미소를 띠는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너, 진우니?”
자리에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건장한 청년 앞에서 선뜻 반가움을 쏟아내기엔 조심스러웠다. 진우가 내려놓는 접시와 물컵을 눈으로 따라갔다. 음식을 차려놓고 나가려는 그를 불러 세웠다. 몰라봐서 미안하다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다.
“할 만해요.”
큰돈 들이지 않고 시작했고, 어머니 도움으로 잘 버티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바쁜 사정을 알기에 우리는 그렇게 짧은 안부로 만남을 대신했다.
내 눈에는 여전히 갯벌의 바람을 맞으며 걸어오던 아이가 겹쳐 보였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횟집을 나서며 갯벌 쪽을 바라보았다. 썰물이 지나간 자리에 예전 같지 않아도 칠면초가 자라고 있었다. 노랑과 연두 사이 어디쯤의 어린싹들이 짠 바람을 맞으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진우를 보며 생각했다. 앙상한 겨울 끝에서 기어이 흙을 뚫고 올라오던 칠면초처럼, 노랑연두의 어린싹은 생각보다 쉽게 꺾이지 않았다. 진우와 내가 함께 보낸 그 시절은, 나에게도 낯선 곳에 뿌리내리는 법을 겪던 노랑연두의 계절이었다.
칠면초 사진: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