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색을 붙잡는 사람

by 은진

나를 붙들어 두는 것들이 있다.

영화관에서는 엔딩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베란다 식물들에 물을 주며 잎의 변화를 살핀다. 책은 구경하는 일이 잦고, 마음에 들면 사 모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제치고 그림 앞에 서면, 나는 한참을 꼼짝 못 한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틈만 나면 화실을 찾았고, 마음에 드는 전시가 있으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요즘은 어반스케치를 배우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림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여전히 가장자리를 맴돌며 안쪽을 조심스레 기웃거리는 쪽에 가깝다.


다만 한 가지, 스스로 조금 다르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다. 색에 대한 감각이다. 나는 색 앞에서 자주 멈춘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골목길의 파란 대문, 레스토랑의 식탁보, 비 오는 날 아이의 비옷 같은 것들. 이유 없이 그것들의 색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색을 조금씩 다르게 읽었다.


색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무들은 저마다 다른 색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햇빛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색은 다 아름답다. 꽃과 식물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색으로 먼저 말을 걸어올 것이다. 제라늄만 보아도 그렇다. 같은 빨강이라고 해도, 어떤 것은 주홍빛에 가깝고 어떤 것은 자줏빛이 감돈다. 핑크라고 부르기엔 너무 다양해서, 그 앞에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나는 그 미세한 차이를 나만의 방식으로 알아가려 했다. 천천히, 때로는 어긋나면서.


물론 나는 색채 이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럴 만한 사람도 아니다. 다만 색 앞에서 무언가를 느끼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고, 거기에는 정답이 없다고 믿는다. 중요한 건 멈춰 서는 일이다. 그리고 느끼는 일이다.


가만히 떠올려 보면 우리의 하루는 늘 색으로 가득하다. 멈춰 서서 바라보지 않을 뿐이다. 거실의 베이지색 소파, 책상 위에 알록달록 쌓인 책들, 아침마다 손이 가는 수건의 색, 창밖 나무의 초록, 벽의 아이보리, 커피잔에 그려진 보라색 꽃잎까지. 나는 이런 사소한 색의 장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붙잡아 두고 산다.


이 연재는 그렇게 붙잡아 둔 색들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색 앞에서 멈춰 섰던 적이 있다면, 함께 나누고 싶다.


어느 카페에서 만난 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