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눈빛, 나도 그랬던 걸까.
대학에 갓 입학했을 무렵, 과 선배가 툭 던진 말이 떠오른다. "처음 봤을 때부터 네 눈빛이 눈에 띄었어. 살아있었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묻지 못했다. 나를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뭔가를 간파했다는 쪽에 가까웠다. 그 시절의 나는 낯선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선배는 어쩌면 그걸 먼저 알아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어려웠다. 일단 거부하고 편해질 때까지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건 단순한 취향이나 성격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에 가까웠다. 그래서였을까. 고양이들의 낯설고 조심스러운 눈빛에, 어쩐지 예전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고양이들이 의자 위에 자주 올라앉는다. 아주 가까운 거리는 허락하지 않기에, 나도 조용히 바라볼 뿐이다. 그런 나를 응시하는 고양이의 눈빛은 맑고 투명하다. 하지만 그 안엔, 차가운 기색과 날 선 경계심이 함께 담겨 있다. 인기척 하나에도 곧잘 몸을 숨기는 걸 보면, 경계심은 쉽게 내려놓지 않는 듯하다.
내게는 그들의 몸놀림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온다. 높은 담을 가볍게 넘고, 장독대에서 지붕까지 솟구치는 모습은 마치 매가 날개를 접고 급강하할 때의 기민함과도 같다. 도시 고양이와는 다른,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 본능에 가까운 그 자유로움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렇게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손을 뻗고 싶어진다. 쓰다듬고, 만져보고 싶어진다.
고양이 식구가 여섯 마리로 늘었다. 사실 주변을 떠도는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동글이와 점순이를 만나 이름을 붙이고, 먹이를 주며 천천히 얼굴을 익혔다. 다행히 새끼들은 어릴 때부터 아는 체를 했다고 조금 친한 편이다. 점순이 새끼들은 ‘요미야, 검치야’ 하고 이름을 부르면, 먹이와 내 눈치를 번갈아 살피며 조심스레 밥그릇 근처로 다가온다.
예전처럼 훌쩍 여행을 떠나거나 긴 외출을 할 수 없다. 밥때가 되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혹시 굶고 있진 않을까. 아니, 아예 떠나버리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 밀려와 서둘러 시골집으로 향한다. 도착하자마자, 어린 시절 엄마가 부르던 소리처럼 자연스레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빨리 밥 먹으라고 몇 번이고 부른다. 그만큼 이 녀석들은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중성화 수술을 고민한 적이 있다. 새끼는 계속 늘고, 사료는 금세 바닥났다. 무엇보다 잦은 임신과 출산이 고양이들의 수명을 줄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게다가 개체 수가 많아지면, 영역 다툼에 밀려 떠나거나 쫓겨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동물의 세계라지만, 정이 들었던 아이 하나가 보이지 않을 때, 그 부재로 오는 허전함이 생각보다 컸다.
끝내 한 마리를 붙잡아 병원에 데려가려 했지만,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작은 몸이 맹렬히 버둥거렸다. 내 손을 할퀴고는 순식간에 달아났다. 그날 이후, 녀석들은 더 경계했고, 나는 또다시 ‘수상한 인간’이 되었다.
고양이와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대한다. 우리가 먹이를 챙기면, 그들은 이 집 어딘가에서 자리를 잡고 머문다.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지만, 쉽게 떠나지도 않는다. 각자의 거리와 방식으로, 우리는 이 집을 함께 지키는 식구가 되었다.
매일 마주하다 보면, 경계하던 눈빛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곁에 오래 머무는 고양이가 생겼다.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기색이 분명하다. 나도 그랬다. 시골에서 막 올라와 모든 게 낯설기만 했던 새내기 시절, 불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눈빛에 드러났을 것이다. 말 한마디 꺼내기까지 한참을 망설였고, 낯선 자리에선 표정부터 굳는 아이였다. 괜히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부족한 모습이 들킬까 봐 조심스러웠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엔 여전히 시골의 느린 호흡이 더 잘 맞는다. 고양이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서두르지 않고, 끌어안으려 하지 않고, 그저 곁에 머무는 것이 좋다.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기로 했다. 어쩌면 그게, 오래 함께 사는 방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