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이웃

by 은진

“이 나무, 왜 이래요?”

소나무 기둥을 따라 맑고 끈적한 액체가 흘렀다. 처음 보았다며 그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송진이라는 내 대답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가까이 다가가 쳐다본다. 흔히 송진은 몇 방울 흐르다 멈추는데, 이 나무는 해마다 흐르고 흘러 결국 뿌옇게 변해버렸다. 바닥엔 뚝뚝 떨어진 송진 덩어리들이 엉겨 붙어 지저분했다.


옷에 묻을까 봐 피하는 사람도 있고, 보기 흉하다며 잘라버리라고 쉽게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후덥지근한 여름날, 서쪽 벽을 서늘하게 감싸주는 그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곳은 원래 무덤이 있던 자리였다. 유족도 찾지 않는 봉긋한 흙더미는 어느 날부터인가 밭처럼 평평해졌다. 실제로 묘가 이장된 것인지, 그냥 방치되어 사라진 건지는 알 수 없다. 대신 그 옆엔 소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려 무성하게 자랐다. 앞서 말한, 송진이 유난히 많은 그 나무다.


그걸 보며 가끔은 나만의 상상을 하게 된다. 무덤 주인과 소나무가 오래 친구처럼 지냈고, 말없이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라고. 눈물이 송진이 되어 흐를 만큼, 사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어쩌면 이런 상상은, 내 안의 오래된 기억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약 부작용으로 잠시 의식을 잃은 적이 있다. 부모님은 그날을 ‘죽음의 문턱’이라 불렀다. 실제로 호흡이 멈췄다고 했다. 살아 돌아온 나를 두고 기적이라며 그 이야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셨다. 비슷한 시기에 막냇동생마저 물에 빠지는 일까지 겹쳤다.


그날 이후, 부모님은 삶의 터전을 새로 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햇살이 잘 들고 앞이 탁 트인 명당을 손수 찾아 집을 지으셨다. 옛사람들이 물 흐름이나 기운을 따졌듯, 아버지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지어진 우리 집은 조금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무덤들이 집을 둘러싼 이상한 형태였다. 아버지는 집안 조상들의 묘라며 괜찮다고 했지만, 죽은 이들이 내 이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셋방살이를 끝내고 마침내 집을 마련한 부모님의 기대를 생각하면, 나도 이해하려 애썼다. 낮에는 밭일하러 드나드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밤이 되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살아 있는 것들을 다 삼켜버릴 듯한 어둠 속에서, 나는 작은 기척에도 쉽게 놀랐다.


낮에 무심코 들었던 죽은 이의 이야기는 밤이면 또렷하게 떠올랐고, 상상은 현실에서 벗어난 점점 더 낯선 장면을 만들어냈다.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키워갔다. 특히 울부짖듯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잠을 설친 밤이면, 귀신들이 이불속까지 따라붙는 기분이었다. 그 정체가 고라니라는 걸 알게 됐을 땐 허탈했지만, 집으로부터의 독립은 더욱 간절해졌다.


친구네 집은 기차가 지나는 마을에 있었다. 오래된 동네였지만 반듯한 도로를 따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기차 소리도 내겐 괜찮았다. 오히려 부러웠다. 무덤에 둘러싸인 내 집 이야기는, 끝내 친구에게 꺼내지 못했다. 시끌벅적해도 그런 동네에서 살고 싶었다. 내 마음을 알 턱 없는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말만 하셨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보다 더 무서운 법이야.”


한때는 무덤 곁에 산다는 게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기차 소리가 TV 소리에 묻히듯, 무덤도 그렇게 보였다. 살짝 솟은 봉분엔 해마다 제비꽃이 피었고, 그 곁으로 하얗게 솟은 삘기(억새 어린순)를 뽑아 입에 넣기도 했다. 혀끝에 달짝지근한 맛이 감기면 또 찾았다. 그렇다고 묘 위로 예의 없이 오르지는 않았다. 무덤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지금도 시골집 둘레엔 많은 묘들이 남아 있다. 부모님이 왜 그 자리에 집을 지었는지 이제는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나에게도 그저 조용한 풍경일 뿐이다.


무덤은 삶이 멈춘 자리가 아니라, 시간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흐르는 장소다. 언젠가 나도 그런 나무 곁에 머물 것이다. 살아서 바라보던 풍경 가까이에서, 조용히 나무들과 대화를 나눌지도 모른다. 잊히는 게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그래서 그 소나무는, 그 자리에 있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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