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망설임 없이 직진하는 사람이다.
이사도 하기 전, 서재부터 만들겠다고 일방적으로 말했다. “이번 주에 해주기로 했어.”
나는 아직 짐이며 마음 정리도 안 되었는데, 그는 이미 시골집 윗방에 시공할 책장 도면을 대충 그리고 있었다. 나 같으면 인터넷 자료를 훑고, 그 방에 어울리는 디자인에 책을 꽂을 높이와 깊이, 나무의 두께와 색상까지 까다롭게 골랐을 텐데. 그는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생각하고 천천히 하자는 나를 두고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쉰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간 평생 못 해.”
결국 일단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답게, 먼저 짓고 나중에 차차 정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몇 주간 주말마다 책을 실어 날랐다. 땀에 흠뻑 젖어 책을 나르고 또 하나하나 꽂으면서도, 그는 내내 즐거운 얼굴이었다. 오래된 시집을 꺼내 펼쳐보다 멈춰 선 표정에는, 원하는 것을 다 이룬 사람처럼 뿌듯함이 가득했다. 둘은 막걸리 한 잔씩을 나누며 조촐하게 축하파티를 했다.
우드색 긴 책상과 의자까지 들여놓고 보니, 그만의 세상이 완성되었다. 책이며 자료들이 질서 있게 꽂히고, 창가에는 커피잔을 올려둘 자리가 생겼다. 더는 방해받지 않아도 되는, 오롯이 그를 위한 조용한 세계였다.
나는 그와 다르다. 망설임의 대표 주자.
시골로 이사하기 전, 그는 한 치 망설임도 없었지만, 나는 마음을 접었다 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내 고향집인데도 현실과 이상 사이를 저울질하느라 마음이 복잡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서재를 구상하며 방을 채워갔고, 나는 그걸 지켜보며 내 방 하나쯤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내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식물집사라면 하나쯤 짓고 싶다는, 그 '썬룸'. 듣기만 해도 꽃으로 가득한 실내 정원이 그려졌다. 농기구를 쌓아둔 헛간을 개조하여 짓기로 했다. 키우던 베란다보다 넓으면 좋겠다는 소망 하나로 벌인 건데, 일이 점점 커졌다. 햇빛이 넉넉히 드는 창, 단열이 완벽한 지붕, 한기를 막아주는 바닥까지. 하다 보니 욕심이 붙었다. 누가 봐도 잘 꾸몄다고 할 그런 온실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완성된 온실은... 음, 좀 딴판이었다.
폴딩도어와 조립식 패널로 마감한 그곳은 내 예상과 다른 구조였다. 너무 튼튼하게 지어진 탓인지, 식물보단 짐을 쌓기 딱 좋은 ‘창고’ 느낌이 났다. 살짝 어두웠고, 시멘트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물건을 쌓아두기 딱 좋을 만한 다용도실 같았다. 온실이라기엔 뭔가 부족한, 그저 애매한 공간이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서두른다. “바닥 타일 색은 어떤 게 좋을까?” 내 방인데, 왜 그가 더 신난 걸까.
“이건 내 방식대로 천천히 채울게.”
내 공간은 서재와는 다르다. 느리지만 분명한 생명이 자라는 곳이다.
빛이 오래 머무는 자리를 찾고, 바람의 길을 살피고, 계절의 차이를 견딜 수 있는 곳인지 가늠해야 한다. 식물은 제각기 다른 특성을 지녔고, 그에 맞는 자리가 있다. 지금은 애써 옮겨놓았지만, 여전히 바닥 여기저기에 머물고 있다. 아마도 1년쯤 지내보면, 이 아이들에게 맞는 자리가 자연스레 보일 것이다.
남편의 속도에 괜히 발부터 들였다. 내 스타일로 다시 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들인 비용을 생각하며 결국 마음을 접었다. 설마 평생을 두고 꾸미겠는가. 내년이면 제자리를 찾겠지.
서재는 먼저 완성되었고, 온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속도는 다르지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