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동료는 교실 안 아이들의 눈빛이 요즘은 무섭다고 했다. 허수아비 보듯 쳐다본다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런 날이면 꼭 믹스커피 두 개를 탔다. 내가 알기로 그는 말은 적지만 별문제 없이 반 아이들을 잘 다뤘다. 그런데도 호랑이띠는 버겁다며, 커피로 스스로를 달래듯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집이나 학원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저마다 텀블러나 컵을 들고 연구실로 모였다. 말이 연구실이지 원래는 학습지를 복사하던 복사실이었는데, 냉온 정수기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휴게실이 되었다. 시끌벅적했던 교실을 벗어나 커피 한 잔을 조용히 마실 수 있는, 딱 하나뿐인 장소였다.
띠 이야기는 대체로 웃자고 하는 말이었다. 호랑이 띠면 1년 내내 호랑이를 길들이느라 녹초가 될 거라는 얘기부터, 말띠 아이들은 교실과 복도를 달리느라 정신없다는 농담까지. 그런데 가끔, 그 말이 이상하게 들어맞을 때가 있다. 선배 한 명은 에너지 넘치는 용띠 아이들에게 곤욕을 치렀다. “애들이 가만히 안 있어. 소리 지르는 건 기본이고 매일 헤집고 뛰어다녀. 정신을 못 차리겠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하길래 듣던 우리는 모두 웃어넘겼지만, 결국 그는 과로로 쓰러져 입원했다.
그렇다고 그게 믿을 만한 이야기냐 하면, 딱히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호랑이띠라고 해서 다 눈초리가 매서운 것도 아니었고, 드세거나 사납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아이들이 다정하고 교실 분위기까지 한결 부드러웠던 해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개인 차이였을 뿐이고, 일반화하긴 위험한 이야기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 우연의 일치였다. 띠와 동물의 특징에 빗대어 지어낸 우리끼리의 썰일 뿐이었다.
그해 처음으로 나와 같은 양띠 아이들을 맡게 됐다. 양띠라면 순하고 조용하겠지. 나도 그렇고… 잘 지내겠지 싶었다. 별 기대 없이 새 학기를 시작했는데, 뭔가 시작부터 달랐다. 처음 만난 아이들인데도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금세 친해졌다. 서로를 알아보는 동족의 감각이라도 있었던 걸까. 내 말을 너무 잘 알아들었다. 웃음 포인트도 척척 맞았다. 말띠 아이들처럼 농담에 정색하는 일도 없었다. 덕분에 마음이 편했다.
무엇보다 내 곁에 다가오는 걸 전혀 어려워하지 않았다. 복도를 걷는 나를 졸졸 따라오다가 갑자기 손을 잡거나, 급식실에 가는 길에서도 서로 내 손을 잡겠다며 장난을 쳤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내 책상 앞을 놀이터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어느새 더 가까이 와서는 “손이 참 예뻐요” 하며 만지작거리곤 했다. 쭈글쭈글한 손이 예쁠 리 없는데도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어두운 밤, 양들이 서로 바짝 붙어 잠드는 것처럼, 살며시 어깨와 손에 기대곤 했다. 나중엔 남자아이들까지도 스스럼없이 팔짱을 끼기도 했다.
처음엔 어색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 특별한 경험이 싫지 않았다. 날 편하게 느낀다는 표시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말보다 더 솔직한, 아이들만의 방식이었다. 해마다 힘든 일 하나쯤은 생긴다. 아이들과 엇갈리는 날도 있고, 이유 없이 지치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말없이 와서 내 손을 꼭 잡아주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손길 덕에 나는 금세 풀리며 편안해지곤 했다.
“선생님 힘내세요.”라는 말 대신, 슬며시 다가와 내민 손. 말은 없지만, 마음이 충분히 전해지는 위로였다. 신빙성 없고 웃자고 한 이야기가 괜히 솔깃해진 해였다. 물론 양띠 아이들을 퇴직하기 전까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며칠 전, 산책길에서 한 가족을 보았다. 아이는 엄마 손을 꼭 잡았고, 서로 허리를 감싸 안은 부부는 다정하게 걸었다. 세 사람이 나란히 걷는 바람에 좁은 길이 꽉 찼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건너 건너편으로 가기엔 조금 위험했고, 앞으로 성급히 지나갈 만큼 바쁜 일이 우릴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 가족은 우리가 뒤에 있는 줄도 모를 만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뒤따라 천천히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같은 양띠로 만난 친구 부부도 저렇게 늘 붙어 다녔다. 볼 때마다 자석처럼 손을 잡고 다녔다. 은행도 쇼핑도, 산책도 함께였다. 두 사람은 누가 봐도 다정했고, 떨어져 다니는 걸 더 어색해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남남처럼 걷는다. 그 가족의 뒤를 말없이 걸으면서, 나는 슬쩍 그의 손을 잡아볼까 하다 말았다. 그는 늘 그렇듯, 앞만 보고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혹시 같은 띠였다면, 그 손이 조금은 더 가까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