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서가 절대 아닙니다

by 은진

“나랑 살자.”

배추 전을 먹던 엄마가 불쑥 그 말을 꺼낸다. 나만 보면 생각난 듯 묻는다.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는 절대 놓지 않으신다. 고집은 여전하다. 지난번에 그러겠다고 했는데도 기억이 없는지 또 묻는다. 한마디면 끝날 걸 알면서도 오늘은 말이 안 나온다. 고개라도 끄덕이면 될 텐데, 그것마저 쉽지 않다.


혼자 사는 게 소원이라던 엄마. 날개라도 단 듯 가볍다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목소리,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머쓱할 만큼 화색이 돌던 모습까지 선명하다. 그런데 이제는 혼자 있는 게 싫단다. 외롭고, 말 상대도 마음 둘 사람도 필요하다고 털어놓는다. 너무 솔직해서 대답하기 어렵다. 이렇게 달라진 건 인지장애를 앓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딸이라면 이해 못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쓰리다. 그 말을 나한테만 하는 게 자꾸 걸린다.


왜 저 말을 반복하는지 안다. 기억이 흐려지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래도 그걸 나한테만 꺼내놓을 때마다 마음이 거북하다. 딸이라면 언제든 달려올 거라 믿는 태도. 말만 하면 다 들어줄 거라는 믿음은 어디서 온 걸까.

“세상에 딸이 제일 편해. 딸밖에 없어.”


엉킨 마음을 풀 듯, 잠들 때까지 내 귀에 대고 중얼대던 엄마. 듣다 보면 말 못 할 사정이 조금씩 비친다. 말없이 들어주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면서 엄마가 바라는 딸에 조금은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가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떠오른다. 지금 우리 엄마도 누군가의 손길이 더 필요해졌다. 그래도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될 수는 없다.


스멀스멀 가슴이 뜨거워졌다. 목에 걸리더니 결국 서운하다고, 그만하시라고 터져 나왔다. 이제 와서 왜 그러냐는 엄마의 말처럼 느닷없이 쏟아졌다. 왜 그때는 말하지 않았냐고 하지만, 정작 “어디 아프니?” “얘들 키우며 힘들지?”라고 물어본 적은 없으셨다. 그런 엄마가 이제 와서 나를 붙잡는다.


나도 잘해드리고 싶었다. 퇴직하면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자고 마음먹었다. 짐을 옮기기 전부터 매주 며칠씩 머물렀다. 밥도 먹고 얘기도 하고, 약도 챙기고, 어르신들 다니는 센터에도 모셔다 드렸다. 엄마는 든든하다고, 편하다고 흡족해하셨다. 그 말 덕분에 그때만큼은 괜찮은 딸이 될 수 있었다.


같이 있으면 좋아지시는 게 보였다.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 뭔가 해드릴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 하지만 먼 거리를 오가고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수면장애가 왔다. 머물기 좋게 화장실을 고치고 작은방도 손봤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효녀라 불렀지만, 사실 그 말을 들을수록 마음이 불편했다.


며칠을 있어도 평소 앉아 있던 책상과 익숙한 냄새가 배인 침대가 생각났다. 미뤄뒀던 글도 쓰고, 읽고 싶은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싶었다. 결국 내 집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내 몫이라 여겼던 일이 내 전부가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쉽게 "좋아요"라는 말이 안 나왔다. 죄송했다.


오늘은 그렇게 말없이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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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