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로 읽는 하루

by 은진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도시. 퇴근 시간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숨 막히게 붐볐다. 거의 꽉 찬 상태에서 문이 간신히 닫혔다. 숫자가 하나씩 켜지는 동안, 엘리베이터 안엔 저마다의 지친 하루가 조용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하루는 버튼보다 먼저, 냄새로 다가왔다.


마지막에 뛰어든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그 숨결 너머로 뜨거운 땀냄새가 훅 들어왔다. 휴대폰을 보던 여자는 고개를 돌려 거울 앞에서 머리를 손질한다. 스친 레몬 향이 상큼하다. 헬멧을 든 사람의 봉지에서는 바삭한 치킨 냄새가 새어 나온다. 괜히 배가 고파진다. 누군가는 향수로 말없이 흔적을 남기고, 누군가는 땀으로 하루의 무게를 전한다.


그 틈에서 문득 생각했다. 나는 어떤 냄새를 품고 있었을까. 마당을 스친 길고양이 냄새, 나무 아래 옮겨 심은 구절초 잎사귀의 풀냄새가 따라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 한마디 없어도,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조금씩 건네고 있었다.


가끔은 내가 개나 고양이처럼 예민해진 건 아닐까 싶다. 눈을 감아도, 냄새는 계속 들어온다. 좁은 공간일수록 더 그렇다. 눈보다 먼저 다가오고, 말보다 더 진하게 남는다. 숨길 수 없는, 몸이 먼저 하는 말. 냄새는 그런 거다.


생각해 보면, 난 어릴 때부터 냄새에 민감했다. 냄새로 장소를 기억했고, 상황도 대강이나마 짐작했다.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이 감각 덕분에 삶이 더 풍성해졌다는 걸 느낀다.

어떤 냄새는 오래 잊고 있던 장면을 갑자기 꺼내놓는다. 고등어조림 냄새 하나에, 아버지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며 모여 앉은 둥근 식탁이 떠오르고, 떡볶이 냄새 하나로 초등학교 앞 분식집에서 가르치던 아이들과 함께 웃던 시간이 되살아난다. 그땐 몰랐는데, 이제는 그 냄새가 왜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았는지 알 것 같다.


바쁘게 살던 시절엔 이런 걸 자주 놓쳤다. 출퇴근길엔 냄새보다 소음이 더 앞섰고, 창문을 여는 여유도 없었다. 시골로 오고 나서야 잊고 살았던 후각이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밤길을 걷다 보면 냄새로 먼저 방향을 짚게 된다. 여기쯤엔 이팝나무, 저기쯤엔 쥐똥나무꽃. 비에 젖은 고양이 털, 습기 머금은 흙냄새, 들꽃향기까지. 누군가에겐 그냥 스치는 공기지만, 내겐 그 안에 많은 게 담겨 있다.

도시에서는 감춰져 있던 것들이 시골에서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 향을 따라가다 보면, 요즘 내가 무엇에 민감하고, 무엇에 끌리는지도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건, 어쩌면 그 냄새를 감지하고, 반응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냄새는 기억을 건드리고, 감정을 일깨우고, 나를 멈춰 서게 만든다.

예민하다는 말, 전에는 불편하게 들렸지만 이제는 다르게 느껴진다. 덕분에 내가 어디에 머물고 싶은 사람인지, 무엇을 지나치지 않고 싶은 사람인지 조금은 알게 됐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개망초 냄새 하나에도 걸음을 멈춘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바람에 실려온 냄새 하나에 멈춰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 그건, 내가 조금은 달라졌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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