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아보자는 결심

by 은진

도시가 싫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떠나기로 했다.

낯익은 거리, 익숙한 얼굴들, 그 속에서 살아낸 날들을 뒤로하고. 불편해서도, 지겨워서도 아니었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 오래 머물던 바람이, 이제는 정말 떠날 때라고 등을 떠밀었다.


은퇴 후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지 남편과 나는 자주 이야기했다. 교통이 편하고 병원과 문화시설이 가까운 도시가 먼저 떠올랐다. 그러다 흙냄새 나는 작은 마당, 새소리가 들리는 조용한 시골도 생각했다. 어디든 괜찮았다. 다만 지금과는 다른 속도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게 결국, 우리가 가장 바랐던 삶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삶을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말로는 쉬웠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자 그것은 단순히 ‘주소’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통째로 바꾸는 일이었다. 여유를 꿈꿨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낯설고 만만치 않은 일상이었다.


여러 갈래의 가능성을 오가다가, 결국 고향으로 향하게 됐다. 내가 고등학교까지 지냈던 곳, 이후 엄마가 시내로 거처를 옮기며 비어있게 된 곳이다. 마을 끝자락에 야산과 들이 펼쳐진 조용한 집. 기억 속에선 늘 바람이 불었고, 조금 외로웠다. 그래서 처음엔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그 풍경을 마음에 들어 했다. “집은 좀 낡아도, 이런 곳은 흔치 않잖아.” 막연한 로망이라도 있는지 묻자, 그는 장모님이 아프신데 가까이 있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되묻고, 탁 트인 시야를 언제든 볼 수 있는 기회라며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정작 그 집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수북했다.


집은 오랜 시간 방치된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장맛비에 무너진 작은방, 벽을 타고 스며드는 빗물, 외부인을 막으려는 듯 찔레가지는 길 한쪽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게다가 생활 여건은 더 현실적인 고민을 안겼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은 가까울수록 좋다는데, 이곳엔 병원은커녕 마트도, 단골 식당도, 배달도 되지 않았다. 작은 증상에도 꼼꼼히 살펴주던 병원, 익숙한 가게, 언제든 갈 수 있던 도서관. 그 모든 편안함을 뒤로하고 낯선 동네로 들어서는 데는 망설임이 따랐다.


당장은 시골집에서 살 수 없어, 근처 오래된 아파트를 구했다. 나중에 정리되면 나흘은 아파트에서, 사흘은 시골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4도 3촌’ 생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꾸기보다는, 조금씩 익숙해지고 천천히 가까워지는 쪽을 택했다.


시골집 손질은 무너진 작은방 지붕부터 시작됐다. 곧이어 기와를 새로 얹고, 울타리와 화장실도 손봤다. 집다운 틀이 조금씩 잡혀갔다. '이 집을 무너지도록 둘 수는 없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었다. 그런데 손을 댈수록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고생할 필요가 있겠어.”

“이제 좀 편하게 살아야 하는 거 아냐.”

걱정 섞인 말들이 주변에서 이어졌다. 작업이 길어지자 우리 부부도 다투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음은 늘 같은 쪽을 향해 있었다.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끝내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결혼도 해봤고, 은퇴도 해봤는데… 집수리는 제일 난이도가 높았다. 굴뚝은 무너졌고, 방은 눅눅했으며, 화장실과 싱크대는 오랜 오물로 막혀 있었다. 손을 댈수록, 평생 해본 적 없는 일들이 하나씩 생겨났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쌓이자, 어느 순간 내가 바라던 삶과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일을 그만둔 게 아니라, 조금 다르게 살아보기로 한 것. 그 변화는 그렇게, 오래된 시골집에서 조용히 시작됐다.

keyword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