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착잡해진 마음으로 마트를 나오는 길에 홍보 팜플랫을 부지런히 나눠주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그는 웃으면서 천천히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안녕하세요! 이정희 작가님 신간 <초보작가 분투기>가 발간되었는데, 이거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나는 팜플랫을 받아 들고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작가가 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루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특별함이 스스로를 변화시켜 줍니다. 이정희 작가의 <초보 작가 분투기>를 구매하시면 글쓰기를 더욱 쉽고 재미있게 도와드리는 이정희 작가만의 노하우가 들어있는 설명서를 부록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도와주는 ‘설명서’라니. 그것은 나의 갈망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엄청난 끌림으로 책을 구매하라며 유혹을 하고 있었다.
서점은 마트의 맞은편 백화점 지하 1층에 있었다. 나는 건널목의 신호를 기다리면서, 빨라지는 심장박동의 리듬에 맞추어 발끝을 움직였다. 백화점에 들어서니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질 만큼의 달콤하고 고급스러운 향기가 진하게 풍겨왔다. 그 향기는 50ml에 30만 원을 훌쩍 넘어서는 고가의 향수였는데, 연분홍색의 투명한 보틀이 조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젊은 여직원은 시향 해보고 가라며 손짓을 했고, 나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지하 1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서점 입구에서부터 이정희 작가의 얼굴과 책 이미지가 그려진 홍보 배너가 있어서 쉽게 그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주간 베스트셀러의 책들이 모여있는 곳에 그녀의 책이 있었고, 포장이 뜯겨 있는 한 권을 집어 들어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정갈하게 분리된 목차와 함께 풍기는 책 냄새는 인쇄 공장의 고유한 울림이었고, 그마저도 나를 설레게 했다. 비닐로 감싸져 있는 책을 안고서 계산대로 향했다.
- 29,600원입니다.
- 혹시 설명서도 주시나요?
앳된 얼굴의 서점 직원은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건 지금 다 소진되어서 없어요.
- 여기 홍보 책자엔 선착순이라는 말 없었는데요..
- 그러니까, 다 나갔다고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홍보를 많이 하는 만큼 으레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사러 온 이유가 설명서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책을 구매하기에 선뜻 고민이 되어 계산을 망설이기를 몇 분째, 금세 계산대엔 내 뒤로 결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 그냥 계산해 주세요.
나는 뒷사람의 눈치를 보며 카드를 내밀었다. 설명서는 없지만, 책을 읽고 천천히 글쓰기 연습하다 보면 설명서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서점을 나와 밖으로 나오니 어스름하게 해가 지고 있었다.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으면 7시라서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숯불 돼지갈비 집에서 서빙을 하는 일인데, 워낙 손님도 많고 시끄러워서 그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란 것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바닥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바다라던가, 나뭇잎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라던가 하는 감성적인 상상은 감히 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늙고 돈 많은 사장은 나를 볼 때마다 저질스러운 농담을 툭툭 던지긴 하지만 급여 밀리는 날도 없었고, 아주 바쁜 날은 보너스 같은 것도 잘 챙겨주었다. 그렇기에 ‘오늘 마치고 집에서 같이 간단하게 맥주 한잔 어때?’라는 식의 껍데기 같은 농담은 가볍게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미숙 씨 오늘 왜 이렇게 예뻐? 누구랑 데이트하고 왔어?
-그냥요..
오늘따라 눈가에 자글자글한 그의 주름이 더욱 돋보였다. 생글생글 웃으며 앞치마 두르는 나에게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 미숙이. 오늘 정말 달라 보인다. 앞으로도 이렇게 입고 다니지 그래?
-...
- 한.. C 정도 되려나?
-네?
-아하하! 아니다, 저기 손님 계산해.
그는 나의 몸을 은밀하고 끈적하게 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무례함과 음란함이 공존하는 더럽고 냄새나는 늙은 사장. 그의 누런 눈동자는 나의 가슴 치수를 그려보며 신나게 낄낄거리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고,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이야기를 들고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달달한 양념에 버무려진 돼지갈비를 먹으면서 식당 안이 시끌해질 때, 나는 숯을 부지런히 나르고 불판을 갈며 뜨끈한 된장찌개를 끓이며 기본 찬을 내고 채워주며 그들의 뱃속을 기름칠해 주고 있었다.
- 아줌마, 냉면 시킨 지가 언젠데 왜 안 나와?
의자에 삐딱하게 걸터앉은 젊은 남자가 큰 목소리를 내며 나를 째려봤다.
-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주방에 확인해 볼게요.
나는 그의 풍채에 겁이 나 급하게 주방으로 가려고 하다가 그만 테이블의 가장자리에 놓인 계란찜을 쏟고 말았다. 그 순간 계란찜 그릇이 남자의 허벅지에 엎어졌고, 그는 소리를 지르며 뜨거운 계란 덩어리들을 쳐내며 벌떡 일어났다.
- 이게 뭐 하는 거야!
- 정말 죄송해요….
- 이 아줌마가 진짜 미쳤나… 당신 일부러 그랬지?
- 절대 아니에요! 주방에 확인하려고…!
- 화상 입겠네! 아줌마, 세탁비랑 병원비 주셔야겠는데? 사과만 할 거야?
- 네, 네?
- 말귀를 못 알아먹네. 아줌마가 그랬잖아, 아니야?
그는 내게 성큼 다가왔다.
-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 아니 그건 당연한 거고. 변상을 해줘야지!
취기 오른 남자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울그락불그락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눈치를 보며 조용히 젓가락질했고, 나를 훔쳐보던 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대답해! 손님을 이런 취급해도 되는 거야? 사장 어디 갔어?
- 저기… 연락을 해볼게요.
- 필요 없고, 그냥 50만 원만 줘!
- 네?
그 순간 심장이 불끈 거리며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부른 금액은 나의 한 달 월급의 반이나 되는 금액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현실인지, 내가 하는 상상 속의 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 따가워 죽겠네. 세탁비랑 치료비 하면 더 나와. 이 바지가 얼마짜린 줄 알아?
- 정말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그만큼의 돈은 어려워서요…
- 이 사람이 정말. 어디서 시답잖은 말을 하고 있어?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 죄송한데요.. 정말이에요….
눈물이 찔끔 나올 만도 한데 어안이 벙벙해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잘 해결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 50만 원도 없다는 말이 나이 그렇게 처먹고 할 말이야? 그러니 지금껏 서빙이나 하고 있지, 참!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혀를 찼다. 그러고선 돈은 됐다는 듯이 손짓을 했고 옷을 입으며 일행들과 나갈 채비를 했다. 그는 돈을 받지 않을 테니 고깃값도 내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시간이 멈춘 듯 그 어떠한 감정을 담을 새도 없이 테이블에 있던 빈 플라스틱 그릇을 그에게 던졌고, 남자의 머리를 세게 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릇은 한참을 바닥에서 뱅뱅 돌며 춤을 췄다. 그는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감싸며 휘청거렸다.
- 이 미친년이!
나의 충동적인 행동은, 그의 일행을 화나게 했고 그들의 손에 이끌려 순식간에 바깥으로 끌려 나왔다.
- 이년 제정신이 아니네!
그의 일행이 달려들어 나를 쓰러트리고 발길질을 했다. 선영의 옷이 더러워지고 있었다. 그제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까... 의식이 서서히 아득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무미건조한 삶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 몸이 더욱더 아파왔다.
사람들의 신고로 다 같이 경찰서로 동행하게 되었다. 처음 탄 경찰차는 조용했고, 처음 간 경찰서는 무서웠다. 그는 나에게 욕지거리를 하면서 아픔을 호소했다.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린 하루, 아니 어쩌면 앞으로 엉망이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시간에서 풍겨오는 불안함의 냄새를 맡았다. 남편과 선영을 기다리는 시간은 초조함과 두려움으로 범벅된 억겁의 시간이었고, 경찰서엔 온통 느끼한 돼지갈비 냄새가 진하게 울렁거렸다.
-엄마!
선영이 경찰서 문을 발칵 열고 나를 불렀다.
-선영 엄마!
남편은 상기된 표정으로 선영의 뒤에서 소리쳤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은 한참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물렁한 바나나, 시들어가는 방울토마토, 그리고 시들어가는 나. 참았던 눈물이 눈가에 차오르며 남편의 한심한 표정과 주저앉아 우는 선영의 모습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선영의 더러워진, 더 이상 새 옷이 아닌 헌 옷. 새 옷이 아닌...
남편의 간곡한 애원과 사과로 사건은 원만하게 합의되어 마무리되었다. 발길질당한 허리, 허벅지 등 온몸이 쑤셔왔지만 나는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적막한 차 안에선 숨소리도 편하게 낼 수 없었다.
- 무슨 20대 애들도 아니고.. 화를 못 참아서 이 사단을 만들고 그래…
그는 큰 한숨을 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 선영이 먼저 올라가라.
집에 도착해 시동을 끈 차는 더 이상 덜덜거리는 낡은 엔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선영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집으로 먼저 뛰어 올라가 버렸다. 그가 아까 전부터 주시한 종이가방 안의 책을 꺼내 들며 앞 뒤로 표지를 훑어본 뒤 나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 초보 작가의 분투기? 포장도 안 뜯었네.
그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담뱃불을 붙였다.
- 당신 작가 되려고? 허.
차 안의 공기가 금세 희뿌연 담배연기로 가득 찼다.
- 그만둬. 지금, 그거 할 때 아니잖아. 당신 지금 나이가 몇 살이야? 그리고 우리 여유도 없잖아. 그런 건 젊고 돈 많은 놈들이나 유유자적하게 여행 다니고 집에서 팽팽 놀며 하는 거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안될 말이라고. 그러니까 내일 환불하러 갔다 와.
나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집으로 향했고, 씻는다는 명분으로 한참을 화장실 변기에 걸터앉아 아픈 몸을 감싸 안고 눈물을 쏟았다. 물소리에 묻혀 아무도 알지는 못했지만, 한동안 눈가가 축축한 상태로 있었다는 것은 눈치 없는 선영이나 무심한 남편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날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기에 그 일은 유달리 빨리 잊혔다. 다음날 더러워진 선영의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여 5만 원권과 같이 그녀의 책상 올려두었다.
이후 나는 노트와 펜을 찬장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늙은 사장이 운영하는 돼지갈빗집도 그만뒀다. 그리고 새벽에 학원 건물 안 강의실 청소하는 일을 새로 시작했다. 남편은 그날에 자신이 조용하게 넘어간 것에 대한 보상을 받기를 원했다. 늘 깨끗한 집과 냄새나지 않는 냉장고, 싫증 나지 않는 다양한 반찬, 주름 없는 셔츠와 짝이 잘 맞추어진 양말, 그리고 때가 되면 그의 발톱을 깎아주거나 귀를 파 준다거나 기간 맞춰서 새치 염색을 해준다던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보다 더 열성적으로 가사 활동에 나의 삶을 지불했고 그의 얼마 남지 않은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정희 작가의 책은 읽으려고 했으나 결국 읽지 못했다. 환불기간이 지나서 비닐 포장 채로 중고 마켓에 반값으로 팔았고 그 돈은 반찬거리에 사용되었다. 영영 그 책을 볼 수 없는 것도 아닌데 내 손에서 떠나보낸 후엔 조금 울적해했다. 대개 40대에서 50대로 넘어가는 이 순간, 지겹지만 여전히 몸을 쉴 수 없는 현실에 다른 흥미를 찾아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금세 관심을 접고 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도시락을 싸고, 청소기를 돌리고, 선영을 깨워 밥 먹이고 학교에 보내고, 세탁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고 분리수거를 한다. 후줄근한 체육복을 입고 장을 보러 나가고 할인 코너의 말라비틀어진 채소를 사고, 새벽이 되면 빈 강의장을 구석구석 쓸고 닦는다. 내 마음의 때까지 모조리 다 닦여나가길 바라면서.
어느 날엔가 잠들지 못한 새벽, 겨우 선잠이 들었을 때 꾸었던 꿈이 아직도 생생하다. 투명한 바닷물에 잔잔한 파도가 가끔씩 시원한 마찰음을 낼 때, 나는 햇빛을 잔뜩 맞으며 온몸으로 광합성을 하는 중이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유토피아의 공간, 그 위에 떠오른 태양은 그 자체로도 강렬해서 몸을 일으킬 수도 없이 나를 내리쬐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나를 부르는 목소리와 인기척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미숙아, 미숙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다정한 음조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가 듣기 좋아서 뜨끈한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지도 모르고 계속 들으려고. 꿈에서 깨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알람이 우는 새벽, 눈 뜰 생각도 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