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김치와 열무김치

by May

5월 초 엄마는 파김치와 열무김치, 세상에 없을 고등어와 참기름 한통을 한가득 보냈다. 그리고 마치 본인의 할일을 다했으니, 5월에는 오지 말라고 엄마는 신신당부했다.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잠깐 엄마한테 가서 얼굴이나 보고 용돈드리고 와야지 하는 생각은 나의 남편과 같은 의견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5월 연휴 2박3일 광주를 여행하기로 했고, 호텔을 잡고 여행 스케줄을 짜고 차를 타고 광주로 신나게 달려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차안에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광주에서 이틀 자고, 잠깐 엄마 볼려고 라고 말이 떨어지자 마자 엄마는 화를 냈다. 다짜고짜 영문도 모르고 왜 저렇게 화를 내야만하는지 설명도 없이 끝까지 화를 내면서 말을 했다. 그 화가 끝날것같지 않아 나는 듣다가 전화기를 먼저 끊었다.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느낌이었다. 그 사람이 엄마였다.

이상했다. 전날 꿈을 꿨는데 엄마, 동생, 아빠가 꿈에 한꺼번에 나온 날은 처음이었고, 참 어색했다. 그 조합이 어색했다.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조합이었다. 그러나 기분은 좋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있을 수 없는 사이였고, 그건 몇십년 전에나 있었던 일이고 지금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광주에 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결심이 될줄 몰랐다. 여하튼 나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엄마 얼굴을 보고 싶었다. 정말 꼭 보고 싶었다. 갈수록 아픈 엄마를 좀더 자주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치 정주해야하는 출발선앞에서 뭐 대단한 준비라도 하듯이 엄마를 보고 오고 싶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할일들을 끝내고 싶었던 것 같다. 어쨋든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나는 씩씩거리며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그러다 여보 일방적으로 누군가 화내를 것은 이런 기분이구나. 그렇게까지 화낼일은 아닌데 상대방이 소리를 치면서 화를 내면 무방비상태에서 당하는 느낌이구나. 남편에게 미안했다. 내가 평소 남편에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화를 참다가 설명하지 못한채, 설명을 조근조근 해주면서 상대방에게 알려주면 되는데 그런 과정 없이 참다가 갑자기 설명없이 화내는 것, 그것이 내가 결혼생활하면서 힘들때마다 남편에게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남편은 들어주다가 그렇치? 이제 알겠지? 그만하고 우리끼리 신나게 다녀오자. 라고 말한 후 우리는 열심히 먹었고, 돌아다녔다. 여기저기 푸르른 날씨 속에서 신나게 돌아다녔다.

광주는 이제 나의 고향이기 보다는 오래된 숲과 문화와 볼것이 많은 도시였다. 그런 아름다운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불과 20년 전에는 나무가 별로 없어서 땡볕에서 5.18자유공원에서 체험학습을 진행하고 걸어갔던 사무실은 이제 울창한 숲이 되어 있었다. 5.18자유공원도 영창과 들불기념사업회 기념탑만 있었는데, 시민들의 일상에 깊이 이용되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나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던 곳 상무지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한강의 전시도 잠깐 보고, 20년 전 복어탕 먹었던 식당도 가고, 막상 주인을 보니 생각이 났고, 묵은지를 먹어보니 그때 먹었던 음식에 묻어 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상무 쓰레기 소각장, 상무시민공원의 트랙, 5.18자유공원 그리고 도심안에 있던 음식점들과 알라딘 중고서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공간들 우리는 그런 공간들을 그리워했다.

신도시에서 맛볼 수 없었던 일상이 그리웠다. 브리나 치킨, 상추튀김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 신나게 박보검의 칸타빌레와 나혼자 산다를 열심히 보고 신나게 웃었다.

아, 신나게 수영도 했다. 발이 닿지 않은 1.5m 깊이에서 수영을 하려니 내몸은 분명이 뜨는데 그 사실을 잊은채 어떻게든 땅에 발이 닿아야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수영을 하려니 두려움만 있었다.

수영킥판에 기대어 나는 수영을 했고, 이로는 신나게 잠수도 하고 더 멀리 가고 싶어했다. 저 도전의식, 두려움 없이 즐기던 용기가 어린 이로에게는 가득차 있었다. 수영을 못해도 상관없었다. 나도 그랬었지.

그러면서 왜 지금까지 그렇게 취준생으로 살면서 하고 싶은일을 루틴하게 해보지 않았을까 왜 스스로를 그렇게 가두고 살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수영도 그렇게 중요하고 하고 싶으면 오전 몇시간이라도 다녀오면 되었는데, 지난 3개월의 시간이 참 허무하게 지나갔다. 이력서, 자소서 쓰다가 그냥 지나간것이다. 면접 준비하고, 대학원을 가야하나 하면서 두가지를 병행해가며 조금 놀때가 된 것은 슬슬 이제 지겹다. 자소서는 이제 그만쓰고 둘중에 하나다 대학원이든 취업이든 이번에 결정이 나면 나는 그때부터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다시 일상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다 나는 일을 선택했다. 사실 스스로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좀더 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스스로 발전,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 갖고 싶은 것 같다.

그러나 일단 기회가 닿았으니 일도 해보는거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이고 나의 이력을 이어갈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수영을 하면서 세종에 가면 이로와 함께 수영장을 좀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고 우리는 열심히 여행을 했다. 다음날은 ACC호텔에 머물면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전시관 2부터 6까지 보았다. 그중에 이이남의 산수화가 제일 기억에 남고 애호가 라는 전시, 미래의 운동회 전시 체험 등이 일전의 전시와는 달랐다.

광주는 젋은 관광객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상하게 한강작가 이후로 정말 많은 젊은이들이 이 보편적 가치를 지켜냈던 광주를 보고 싶어서 온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아시아문화전당 근처에 새로 짓고 있는 높은 빌딩과 한강의 콘텐츠가 여기저기 저예산으로 흩어져 있었던 것이 아쉬웠다.

오랜만에 광주에 갔고, 아는 사람들을 우연히 볼 수 있는 도시였지만 누구하나 편하게 연락하기 힘들었다. 평소 연락을 안하다가 연락을 하려니 어색함이 있었고, 뭔가 필요할때 연락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래도 하루 더 자고 싶다는 욕망을 누르지 못한채 초등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에게 엄마의 일을 넋두리를 한참 털어내고, 친구의 위로를 받으며 나는 광주를 떠날 수 있었다.

과거 우뢰매 영화를 보았던 광주공원과 사직공원까지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갔던 길에는 초등학교 앞까지 지나가면서 그때 그곳이 그대로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남편에게 여보, 우리 이로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 우리는 상무지구에 와서 살자라고 하니 남편은 좋치 하면서 세종으로 돌아갔다. 찜찜한 마음은 남아 있었고, 여전히 나는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에세이 책을 읽으면서 남은 연휴를 보내고 있다. 그 중에 엄마를 이해해보고려고, 나의 원가족의 아픔을 이해해보려고 하다보니 아래 글귀가 기억에 남아 몇자 적어본다.

"소영이 엄마, 나와봐. 네가 뭔데 내 새끼 기를 죽여. 어? 애가 뭘 안다고, 애한테 그런 소릴해? 나 술먹는거? 그래 나 술먹어. 혼자된 게 억울하고 분해서 먹어. 너네처럼 남편없는 거 힘들어서 술마셔. 근데 내 딸한테 뭐, 머리가 어쩌고 저째?"무방비 상태에서 엄마의 큰소리에 당황한 아줌마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졌다. (P210)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래, 엄마는 남편이 없지. 일상에서 나는 남편이 있다고 엄마에게 행복한 모습 그 자자체로 살고 있는 나는 도저히 남편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남편이 이틀만 비워도 힘들어한다.

그래서 주말부부를 도저히 할 수 없어서 나는 여기 세종까지 이사를 왔다. 억울함을 갖고 왔다고 하지만 그 억울함과 남편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의 마음까지 가져왔다. 엄마의 그 근본적인 허전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고자 이 글로 마무리하려 한다. 동생은 그동안 엄마가 술마시면 술주정을 계속 들어주었고, 최근에 동생은 엄마에게 엄마 나에게 전화하는 건 좋은데 제발 술취해서 전화하지는 말아달라고 동생이 말하자. 엄마는 자식 키워도 소용없다는 말을 남긴채 엄마는 화를 냈다고 한다. 그 화의 불똥은 결국 나에게 튀었다. 늘 그랬듯이 첫째는 그런 존재였던것 같다. 늘 부모의 첫 화와 당황스러움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존재.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삶은 내가 지금 남편과 키우면서 순간 순간 생각해볼때마다 놀랍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이다. 마치 가보지 못하는 우주 같은 일이라 어렵다.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무조건 암기해야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한참 내 하소연을 들어주게 되었고, 나는 남편이 만들어준 김치볶음밥과 카레를 먹으며 엄마가 보낸 파김치와 열무김치를 먹고는 마치 치유를 받듯히 김치가 내 입속을 맴돌면서 마치 사탕이 녹듯이 결국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그녀의 김치를 먹으며 다시 고마워하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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