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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갬성개발자 Feb 26. 2021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글솜씨와 과학적 상상력이 만난다면


SF 단편소설 모음이다.

상상력이 풍부하시고 글도 너무 잘쓰신다.

그리고 소설 앞, 뒤에 그런 상상을 하게 된 실제 배경(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 등)을 설명해주셔서 더 재밌었다.

특히 '튜링 히어로' 라는 소설을 너무 너무 재밌게 읽었다.

뒷이야기도 계속 써주셨으면....!!!


그리고 많은 생각이 교차한 소설은 '메멘토 모리' 였다.


우리 몸의 노화를 영구히 멈추어 준단다. 그래서 모두가 환호했고 기꺼이 그 주사를 맞았어. 하지만 그런 후에 그들은 깨달았지. 늙어 죽지 않는다는 것이 곧 죽음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야. 생각해 보렴. 사람은 늙어서만 죽는 것이 아니야. 병으로 죽고, 전쟁이나 범죄로 서로 죽이고, 비행기나 자동차 사고, 짐승의 공격 등 그 밖에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사고로 죽지. 하지만 그런 죽음까지 이터너티가 막아 줄 수는 없지 않겠니.


반대로 이야기하면 일단 이터너티를 맞고 나면 이제 병만 걸리지 않으면, 사고만 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를 위험한 일에 말려들지만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거지.”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들어 보렴. 예전에 인간에게는 용기라는 게 있었지. 지금과는 달리 때로는 위험한 일에 자진해서 덤벼들곤 했단다. 자기가 믿는 신념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

  “그건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죽음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용기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조금 앞당길지도 모를 위험에도 덤벼들 수 있었던 거야"

다들 어렵사리 얻은 영원한 삶의 기회를 절대로 망치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혹시라도 병을 옮길지 모르는 다른 인간과 생물들로부터 멀리 도망갔고 어쩌면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바깥세상으로부터 꽁꽁 숨어 버렸어. 무엇인가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상상도 못하게 됐지. 결국 영원히 살기 위해 무한한 겁쟁이가 되고 만 거란다.”


그리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과 그보다 백 배쯤 더 강렬했던 부와 명예의 욕망 속에서 그 약을 만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늘 그랬듯이, 다들 죽음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은 나중의 고민으로 미뤄 두고 하루하루를 바삐 살았겠지. 때로 지루하고 노곤한 일상이겠지만 그 속의 소소한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언젠가 떠날 날이 오면 모든 걸 내려놓을 줄도 알았을 테지. 그런데 영생을 얻은 지금은 오히려 모두가 매 순간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죽음에 대한 경계와 저항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고 말았다.

  가끔 의문이 든다. 나는 인류에게서 죽음을 제거한 구원자일까, 아니면 인류 전체를 영원한 영육의 무덤 속에 가둬 버린 악마일까? 애나의 말처럼 머지않아 죽고 나면 그 의문의 답을 얻게 될까. 모르겠다. 그저, 지금 내가 아는 것은 그런 일을 벌인 내게 영생의 자격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소멸을 통한 영원한 안식과 지옥이라는 거대한 무책임의 형벌 중 하나를 얻게 될 그 죽음의 날을 나만은 피해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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