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우동을 먹으러갔다.
홀 알바생은 내 또래로 보였고 홀 주문, 포장 주문 다 친절한 목소리로 잘 받아주셨다.
주방 앞에 서있는 알바생에게 주방에 있던 우동 만드는 아저씨가 (사장님인듯) 계속 핀잔을 줬다.
주방에서 그렇게 가까운 테이블이 아니였는데도 잘들린 것을 보면 손님들 신경안쓰고 그냥 막 말씀하시는 듯했다.
기분나쁜 어조의 반말+명령+넉두리가 계속 됐다.
"이거 왜 안했어"
"빨리 갔다와"
"궁시렁 궁시렁 너가 이걸 안해서 궁시렁궁시렁 이거 안보이니 궁시렁 궁시렁 내가 너때문에 궁시렁 궁시렁"
그래.. 여기까지 K-꼰대로 어거지로 이해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말은 내 마음에도 비수로 꽂혔다.
"너는 네네네네만 하지 센스도 없고 눈치도 없어"
우동만드시는 아저씨.. 저도 네네네네 를 많이 하는 데 이건 엄청난 경청의 표현입니다. '~만 한다'고 표현할 수 없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조차도 수치심이 드는데 손님들 다 듣는데서 이걸 들은 알바생은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생각이 들었다. "너무 하잖아" 하고 몸을 돌려 주방을 쳐다봤지만 내 자리에서는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눈빛공격실패)
계산을 할때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녀에게 더 밝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했으나 그녀의 얼굴은 너무 안좋았다.
(그녀는 그 와중에도 프로정신으로 내가 시킨 메뉴를 한번 더 확인해주시고 친절히 말했다.)
그 후, 필라테스에 갔는데 하나도 집중이 안되고
내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 우동집 알바생 직장내괴롭힘 구출 시뮬레이션 ]
[ 직접형 ]
# 1. 테이블에서 회사의 직장내 괴롭힘 교육 영상을 크게 튼다. (아 이거 오늘까지 인데 까먹고 안본척)
-> 주방에서 우동을 끓이시느라 안들릴 수도 있다.
# 2. 직장내괴롭힘 손님 신고를 한다. (구글링해보니 없는 것 같다)
-> 만약 가능하더라도 아저씨가 알바생 친구가 한 걸로 착각하고 알바생을 더 미워할 수도 있다.
[ 지능형 ]
# 3. (나는 혼밥중이였으니) 큰 소리로 전화를 하는 척. "누구누구야? 나 오늘 팀장님이 네네네네만 하고 센스도 없고 눈치도 없다고 했는데 진짜 너무하지 않니? "
-> 매우 큰소리로 해야한다. 주방에서 우동을 끓이시느라 안들릴 수도 있다.
# 4. 주방에 가서 "우동이 너무 맛있어서 감사 인사드리러 왔어요 알바생분도 너무 일잘하시고 여기 우동집 최고네요! 제가 볼 땐 알바생분이 복덩어리 이신 것 같아요~ 더 장사 잘될 거에요"
-> 손님이 주방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좀 실례일 수 있고 고난이도의 능글+서글 스킬이 필요하다.
[ 솔직형 ]
# 5. 주방에 가서 "우동은 너무 맛있으나 손님들 다 들리는데서 알바생에게 심한 말하는 것은 보기가 너무 안좋습니다. 잘먹었습니다~"
-> 손님이 주방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좀 실례일 수 있고 K-컬쳐 상, 나이 어린 내가 이런 말하는거에 더 노하실 수도 있다.
[ 박신양의 애기야가자(?) 형 ]
# 6. 만약 내가 회사의 CEO라면.. 알바생 손을 잡고 "알바생아 가자. 우리 회사에서 알바해" 하며 멋있게 우동집을 나온다.
(사실 이게 자꾸 시뮬레이션 된다... 머릿속으로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들이 모인 회사도 이미 설립했다..)
[ 간접형 ]
# 7. 계산할 때, 알바생에게 "힘내세요! 일 너무잘하세요!" 속삭이며 나온다. 작은 초콜릿과 함께 라면 더 좋겠지만 주머니에 초콜렛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 알바생에게는 순간적 위로가 되지만 우동아저씨는 그대로 일 것이다. 근본적 해결방안이 아니다. 그리고 오히려 모른 척해주는게 알바생이 더 마음이 편하실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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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보니 [ 박신양의 애기야가자(?) 형 ] 만 사이드이펙트가 없다.. (??)
시뮬레이션 그만 돌리고 알바생과 우동아저씨를 위해 기도하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