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막장 소설
윌리엄 호가스의 결혼 세태

1화 결혼계약

by 김은진

그림 : 윌리엄 호가스

분류 : 그림으로 읽는 막장 소설

제목 : 결혼 세태(Marriage a-la-Mode)(총 6화)

배경 : 18세기 런던

등장 인물 : 스퀀더필드 백작, 스퀀더필드 자작(백작의 아들), 안토니오, 헤로디아(안토니오의 딸), 실버텅 변호사, 샤일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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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퀀더필드 백작은 초조했다. 자금이 부족하여 짓고 있던 이탈리아풍 저택의 건축이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바닥에 석재가 널브러져 있고 인부들은 일당을 못 받아 현장에서 일도 안 하고 앉아 있다. 일을 맡은 건축가 존스는 창가에 서서 설계도를 보면서 한숨을 쉬고 있다. 그의 조급한 마음이 백작에게 전달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명색이 귀족인데 다급한 마음을 애써 감춘다. 어떡하든 이번 자식 결혼을 성사시켜 자금 마련을 하는 것이 급선무다.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흰색 가발로 한껏 권위를 나타낸 백작이다.

하인에게 시켜 갖고 온 족보를 쫙 펼친다. 족보를 보는 일은 언제나 자랑스럽다.


" 그러니까 우리 집안이 말입니다. 정복왕 윌리엄의 후손이란 말입니다. 1천년 이상 귀족 집안 보셨습니까?

우리가 아무나하고 그렇게 사돈을 맺는 그런 집안이 아니란 말입니다."


안토니오는 백작의 허세와 으스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런던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업가로 딸을 백작 집안에 시집 보내 신분 상승을 하고자 한다. 중매업자가 보여준 결혼 계약서를 꼼꼼히 읽는 척 한다. 사실 백작 앞에 화폐와 지폐를 쏟아 놓은 것을 보면 그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이다.


"뭐 더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중매업자는 안토니오가 그렇게 사려깊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계약서를 읽기도 전에 자신의 돈을 자랑질해대고 아무렇게나 화폐주머니를 내팽개쳐 놓는 것이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돋보기 쓰고 꼼꼼히 읽는 척 하는 것이 중매업자로서는 가소로울 뿐이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돈을 헤프게 쓰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백작도 그의 평범하기 그지 없는 옷차림을 보고 진짜 돈이 많은 사람인지 의심할 정도로 돈에 있어서는 인색한 사람이다.


"자자자, 다들 만족하시지요?"


샤일록은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이다. 단순한 중매업자가 아니라 백작에게 빌려준 자기 몫의 돈을 챙기기 위해 안토니오를 물색한 것이었다.


"백작님, 앞으로 집안이 더 번성하시겠습니다." 하면서 대출서류를 내민다.


샤일록은 테이블 위에 있는 지폐 중 빌려준 돈을 미리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자자자, 이번 결혼의 주인공들도 인사 서로 나누시죠."


백작의 아들은 푸른 옷의 상위를 입고 한껏 멋을 부렸다. 새 신부를 위한 차림이라기 보다 원래가 유행에 민감해서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것이라면 누구보다 빨리 흡수하는 청년이다. 신대륙에서 들여온 고급 기호품인 코 담배를 작은 상자에서 꺼내 피울 모양새다. 청년이 신붓감에게 관심도 주지 않고 거울만 쳐다보며 셀카라도 찍듯 '오늘 머리 좀 잘 됐네. 역시 난 멋져'하며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 샤일록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신랑 자랑을 늘어 놓는다.


"우리 스퀀더필드 작위님 정말 잘생기셨죠. 저것 보세요.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빨간 굽의 구두를 벌써 구입해 신으셨네요."


그러나 아무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등을 돌려 앉아 있는 안토니오의 딸 헤로디아는 우울해 미칠 지경이다.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 이렇지 않을까? 손수건에 결혼반지를 끼워 빙빙 돌리고 있다. 모든 것이 의미 없다. 신랑의 모습이 궁금할 법도 한데 영 자기 스타일이 아닌가 보다. 신부 뒤에 걸린 그림 속 메두사가 신부의 마음을 대변하듯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아가씨, 힘내세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거에요"


헤로디아에게 다가가며 실버텅(Silvertongue) 변호사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인다. 실버텅은 워낙 말주변이 좋아서 여자들을 홀리는 기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름조차 은(Silver)으로 만든 혀(Tongue)라는 뜻이다. 실버텅은 신랑의 목에 있는 검은 점을 보고 아가씨의 처지를 더욱 딱하게 여긴다.

계약서를 다 살펴본 안토니오는 그제서야 백작 집에 걸려 있는 그림들에 눈길을 돌린다


'역시 귀족집에는 그림들이 많군. 그런데 하나같이 기분 나쁜 그림들이야'


안토니오는 유독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그림에 눈길이 간다. 별 의미를 두지는 않았지만 찝찝한 마음은 남는다. 창문 옆 백작의 대형 초상화를 보며 안토니오는 백작에게 아첨하듯 묻는다.


"백작님 젊으셨을 때, 인기 많으셨겠습니다. 그런데 스퀀더필드 백작님, 가문의 성이 워낙 특이해서 그런데 무슨 뜻인가요?"


스퀀더필드는 '낭비하다, 탕진하다' 뜻의 스퀀더(Squander)와 들판을 뜻하는 필드(Field)가 합쳐진 이름이다. 백작 가문이 워낙 낭비와 사치가 심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백작은 천연덕스럽게 "낭비와 사치를 많이 해도 끄덕없다 뭐 그런 거죠 하하"


안토니오는 "저와 사돈지간이 되셨으니 말이 되는 것 같네요." 라며 웃는다. 자신의 딸이 스퀀더필드 자작부인이 되고 자신도 귀족 가문으로 승격하는 것이 만족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발이 아픈신가 봅니다"


백작의 오른발이 붕대로 감겨 있고 목발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안토니오가 묻는다. 백작은 통풍을 앓고 있는데 워낙 기름진 음식과 술을 좋아해서 생긴 병이다.

'완전 부자병에 걸렸군.' 구두쇠 안토니오는 귀족들의 그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 두 마리가 이 상황이 한심하고 지루한 듯 늘어져 있다. 서로 쇠사슬로 묶여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보인다. 거기다 전혀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앞으로 결혼하게 되는 신랑 신부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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